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식(삼국지) (문단 편집) ==== 후계자 경쟁 ==== 조식은 조비와 함께 후계자 경쟁을 하게 된다. 아직 후한까지는 장자상속제가 확고하지 않은 시대였고[* 후한 황제 중에 장자 출신은 몇 없다. 광무제부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다.] 조식은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높았다. 조식의 주위에는 [[양수(삼국지)|양수]] 같이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고, [[순욱]]의 아들인 [[순운]]이나, [[정의(삼국지)|정의]], [[정이]] 형제들도 조식의 파벌이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조비는 [[가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재능이 아니라 효심을 보여 조조의 마음을 얻으려 했고, 조식은 자유분방한 성품에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 구설수에 오르는 등 처신에 문제가 있었다. 특히 조식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양수가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조조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는데, 후계자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해 조조의 마음을 더 거스르게 된다. 가후뿐만 아니라 [[모개]]도 원소의 예를 들어 조비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카딸을 조식에게 시집보냈던 최염도 장자계승을 이유로 조비를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즉, 여러 인물들이 장자 계승 원칙을 주장해야 했을 만큼 조조는 재능 있는 조식에게 마음이 가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원소]]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담]]은 무인으로써의 능력은 나름대로 입증했지만 통치 능력에 있어서는 낙제 평가를 받았고 아무런 지지기반이 없던 [[원상]]이 어린 나이에도 원담을 격파하고 조조를 일시적으로 물리치는 능력을 선보인 것으로 봐서는 원소의 원상 후계자 선택은 능력이라는 면에서는 딱히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유표]]의 경우는 [[유종(삼국지)|유종]]을 후계자로 택한 이유가 유종의 뒤에 있는 채씨 가문의 강대한 위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고. 단지 그들의 문제는 원소의 경우 원담을 배제하기로 작정했다면 호적에서까지 파버린 시점에서 아예 청주 지배권까지 박탈하는 등 후계자 구도를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원담이 자체 세력을 유지하게 만듬), 유표의 경우 유종 선택은 내부 호족 세력들의 후계자 구도 정치 싸움 상 유기가 도저히 승산이 없어서 그랬다는 결론에서 나온건데 그 호족 세력들이 조조를 막을 능력은 또 없었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모개나 [[최염]] 등이 장자계승 원칙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저 말을 한 두 사람은 조조에게 있어서 공신급 인물들인데, 조조는 위왕 즉위 이후 거슬린다며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최염을 처형하고, 모개를 면직시켰다. 위의 내용이 연의라지만 가후만큼의 처세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가후는 조비 라인이었고.] 조식의 행실 문제가 지적되면서 조조는 결국 조비를 태자로 삼았다. 조비가 태자가 된 이후에도 조식은 제법 지지세력이 남아 있었고 조조도 조비를 태자로 삼음과 동시에 조식에게는 식읍 5천 호를 더하여 총 1만 호의 식읍을 주는 등 총애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천자가 가는 길을 통해 궁문을 열고 나간 사건이 이슈화되면서 대노한 조조에게 문책받는 것을 계기로 점차 조조 총애를 잃었고, 이 무렵 조조가 조식의 세력이 너무 큰 것을 견제해 양수와, 평소 조식과 친하게 지내던 정의, 정이 형제를 죽였기에 조식은 항상 불안한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