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민 (문단 편집) ==== 팔꿈치 부상과 퇴단 ==== 1998년 드디어 기량이 만개하는가 싶었지만, 선수로서 정점에 섰던 바로 그 순간 그의 인생 최대의 불운이자 커리어를 망쳐버린 팔꿈치 부상이 찾아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상 시점은 올스타전이지만, 사실 전반기 마지막 두 경기에서 대량 실점하며 이미 부진에 빠진 상태였고 그 원인이 바로 팔꿈치 부상이었다. 이런 경우 나가시마 감독이 출전을 만류했어야 했는데 웬일인지 그냥 놔둬 버렸다.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올스타전 [[센트럴리그]] 팀 투수코치인 [[곤도 히로시]](당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감독)에게 알리라고 조성민에게 조언은 했다는데, 뚜렷한 이상징후가 있었다면 올스타전에 아예 내보내지 않는 것이 당연히 맞는 선택이다. 당시 팬투표로 뽑힌 것도 아니고 감독 추천 선수였으니 더욱 아쉬운 일이다. 조성민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등판 당시 팔도 못 들 정도로 [[팔꿈치]]가 아프니 교체시켜 달라고 직접 [[일본어]]로 곤도 히로시에게 호소했으나 "이 녀석 갑자기 무슨 얘길 하는 거야"면서 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극심한 팔꿈치 통증에도 불구하고 8회부터 경기 종료 때까지 2이닝을 소화한 결과 몸에 제대로 탈이 나고 만다. 곤도 히로시에게 조성민이 한 호소가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곤도 자신이 혹사로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한 당사자이기에 투수 혹사를 가급적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 하지만 당시 조성민이 부상을 당하고 요미우리가 즉시 항의한 점, 요미우리와 요코하마가 1위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중이던 점, 당시는 9회였고 엔트리에 전문 마무리 [[사사키 가즈히로]]가 멀쩡히 남아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사사키가 당시 요코하마 소속이었다는 점 등을 보면 사실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해당 시즌 센트럴리그는 요코하마가 우승했다! 요미우리는 조성민 이탈 이후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를 펼치며 3위를 기록했다. 이후 곤도는 우승에 눈이 멀어 상대팀 에이스를 망가뜨렸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도 당시에도 이미 [[토미 존 수술]]은 대중화되어 있었기에[* 심지어 KBO리그에서도 1992년 [[정민태]]를 시작으로 90년대 후반에 이미 많은 피시술자가 있었으며 정상 복귀에 성공한 선수도 많았다.] 제 때 수술을 받고 재활만 착실히 잘 했으면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성민은 이렇게 하지 않았고 잘못된 선택을 잇따라 하게 된다. 일단 올스타전 사건 이후 바로 수술대에 오르지 않고 이듬해 3월까지 기다렸다가 [[https://news.joins.com/article/3757762|뒤늦게 수술을 결정했다]]. 이제 막 처음으로 잘 나가보려는 참에 부상을 당했으니 재활을 통해 일단 시즌 마무리는 해보고 싶었던 것. 그러나 생각보다 팔꿈치 상태가 심각하여 수술 없는 재활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그래도 더 미루지 않고 1999년 초에 수술을 받은 것까진 좋았는데, 이번엔 복귀를 너무 서두르다가 탈이 났고 재활도 그만큼 늦어졌다. 그래도 팔팔한 20대 시절이었으니 이듬해에 복귀하는 데에는 성공한다. 2000년에는 인기배우 [[최진실]]과의 열애설이 터지며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발목부상, 어깨 부상까지 추가로 당하며 14이닝 투구에 그친다.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잃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즈음. 이 당시 조성민 외에 [[정민철]]과 [[정민태]]가 차례대로 요미우리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투수 3명끼리 1군 외국인 선수 [[T/O]]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다. 정민철은 정민태의 입단에 긍정적이었던 반면 조성민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0/11/14/2000111470192.html|#]] 조성민은 이렇게 컨디션이 별로이니 주어진 보직도 왔다갔다했는데, 부진한 선수를 무작정 고정 보직에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2001년 시즌에는 절치부심하고 강도높은 훈련을 소화하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이번에는 다시 팔꿈치 통증이 재발했고, 이 번에는 시즌 후까지 기다리지 않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6/12/2001061270111.html|바로 수술을 받긴 했다.]] 그러나 또 다시 무리하게 빠른 재활을 시도하면서 완전히 구위를 잃게 된다. 이후 2002년 시즌 초 극적으로 1군에 콜업돼 선발승도 거두는 등 몇 경기에 더 나서긴 했지만 이미 속구 최고 구속이 140대 초반에 머무는 등 본인의 경쟁력을 거의 다 상실한 상태였다. 결국 [[2002년]] 10월 구단과의 합의하에 퇴단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자유의 몸으로 귀국하며 인생 3라운드를 노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