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일보/비판/허위보도 (문단 편집) === [[신탁통치 오보사건]] === [[https://news.joins.com/article/19140833|(중앙일보)"미국, 1942년부터 한국신탁통치 계획" 美 현대사 연구가 문헌 발굴]] [[동아일보]]의 초대형 오보 사건으로 생각하겠지만 조선일보도 동아일보와 같은 날 오보를 해버렸다. 다만 동아일보가 가장 크게 이슈화 되면서 이후 상당기간 동아일보가 집중 난타를 당하면서 조선일보의 신탁통치 오보는 상대적으로 묻혔다. 당시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신탁통치에서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 논의된 조선독립문제 소련은 신탁통치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했는데 미국과 소련 둘다 한국의 독립을 준비하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실제로도 합의를 보았다. 즉 기존의 소련 신탁통치, 미국 즉시독립은 허위보도와 허위보도로 인해 촉발된 진영논리에 의한 허위 [[프로파간다]]일 뿐이며, 미소(미국 + 소련) 공동위원회를설치, 임시정부를 통해 미국 영국 소련 중국등 4국이 최장 5년간 신탁통치후 총선거를 실시해 한국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만든다는 것이 실제 펙트이다. 한겨레에 의하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주장'...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 기사제목이다. ‘동아일보가 쓴 ‘합동통신 워싱턴발 25일자 보도’를 근거로 쓴 이 기사는 사실은 1945년 12월27일 아침 <조선일보>에 먼저 실렸다. 석간이던 <동아일보>는 몇 시간 뒤 같은 기사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1면 톱기사로 실었다고 한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80|##]] 이 오보 사건 덕분에 한국은 [[신탁통치]]에 대해 날조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게 퍼졌다. 물론 당시 한국으로서는 해방된지 얼마 안 돼서 신탁통치에 대해 또다른 국가에 의한 통치를 받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반발은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해는 간다 정도이지 신탁통치 사건에 대해 당시 한국의 여론과 인식은 언론사들의 허위보도 때문이라고는 하나 신탁통치에 대해 크게 오해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애초 신탁통치를 제안한 것은 '''"미국"'''이고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의 신탁통치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자치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일 뿐이였다. 때문에 적어도 이 사안만큼은 [[소련]]이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허위보도들로 인해 한국에서는 억울하게 소련에서 신탁통치를 밀어붙인 것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정작 소련측은 미국의 동아시아내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서 신탁통치 기간이 짦을수록 좋다고 하는 등 수동적 입장이였다. 여러 자료들과 언론 보도로 인해 추가적으로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대해 신탁통치를 계획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중 한명으로 이유는 ''''한국이 자치능력을 갖기 위해선'''' 약 20~30 년정도 신탁통치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신탁통치 오보사건을 낸 동아일보조차도 이후 2000년대 기사에서 신탁통치는 미국의 구상이였음을 인정한다,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041205/8135593/1|(동아일보)신탁통치가 분단 막았을까]] 다만 조선일보로서도 이 사안에 대해 변론할 말은 있긴 하다. 당시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언론들에서 동아일보,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신탁통치에 대해 오보들을 내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