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평가 (문단 편집) === 북한 ===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 《…조선력사는 우리 인민이 자기의 슬기와 재능으로 과학과 문화,경제를 발전시키고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줄기차게 싸워 승리한 투쟁의 력사, 창조의 력사입니다.》 > 5학년 조선력사에서는 우리 나라 봉건시기 마지막왕조였던 리조봉건국가의 력사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리조시기 력사 역시 우리 인민의 투쟁과 창조로 자랑높다. > 우리는 여기에서 리조봉건국가는 언제 어떻게 세워졌으며 통치제도는 어떠했는가,경제와 문화는 어떻게 발전했는가, 16세기 일본의 대규모침략과 19세기 후반기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자본주의침략자들을 어떻게 물리쳤는가[* 물리치기는 했지만 김일성이 해줄 수 있는 것을 못해서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끝난다.] 하는 내용들을 배우게 된다. > 우리는 조선력사과목학습을 잘하여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소유한 부강조국건설의 참다운 역군으로 튼튼히 준비하여야 한다. >---- > 2012년판 중학교 5학년용 [[조선력사]](북한의 국사 교과서), 머리말에서 [[북한]]은 '조선'이라는 국명을 사용하면서도[* 사실 여기서 쓰는 조선은 고조선이나 조선왕조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문화와 민족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한 예로 중국,일본,베트남에서는 아직도 남북한을 통틀어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정작 조선 왕조에 대해서는 리조, 즉 이씨 조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흥선대원군]], [[위정척사파]]등 북한 정권의 체제 선전 정당화에 도움이 되는 경우를 제외[* 북한 정부 입장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반반씩 서술한다.]하고는 평가가 매우 박한 편으로 남한에서의 조선에 대한 평가보다 더 박한 편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국가 체제만 비하하지 주민에 대해서는 좀 호의적이다.~~그런데 지들은 조선왕조는 명함도 못 내밀 짓을 하고 있다~~ 오해가 있는 부분이라면 북한에 있기 때문에 어떤 지역색을 가지는 서술[* 이는 사회주의 민족을 주장하던 [[동독]]과 달리 북한 정권이 남한을 복속시키는 것을 바라고 남한 사람도 '김일성 민족'이라고 주장하던 북한과의 차이가 알려지지 못한 것이다. 애시당초에 [[남북관계]]에서도 남북한을 다른 나라라고 하면 북한에서 매우 싫어한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남한보다도 그런 경향이 적다. 신라, 백제는 같은 민족의 나라라고는 명시할 지경이며 남한 쪽 역사에 대한 서술이 꽤 상세한 편이다. '지방주의'라고 많이 언급되는 지역주의는 오히려 김일성 이외의 권력을 상징할 수도 있고 [[적화통일]]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때문에 중대한 탄압대상이다.[* '당의 통일단결을 파괴하고 좀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당적사상요소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며 그 사소한 표현도 절대로 묵과하지 말고 철저히 극복하여야 한다.'라는 헌법 이상의 규범력을 갖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라는 규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아까운 땅을 미국[* 《두개 조선》 조작을 벌인다면서 극렬하게 싫어한다.]과 일본이 이중식민지로 만들어 놓았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탈북민조차 이 교육의 영향이 남아[* 한국 정부가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해 이런 경향을 놓아두거나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이들이 자신을 외국인으로 여기면 사회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 당신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을 이런 곳에서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편에 비해 남한 사람은 진심으로 자신의 민족으로 여길 정도다. 북한이 자신을 [[고조선]]에서 국명을 따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냥 예전부터 조선이 쓰여 왔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김일성]]의 '독창적인' 국호라는 식의 이상한 주장을 끼워넣을 뿐이다. 1948년 국명 선정 과정에서 고조선을 염두에 두고 국명을 선정했을 리가 없다. 당장 북한은 1993년 [[단군릉]] 중건 이전까지 고조선을 그리 중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조선이란 국호로 정한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 민족권의 호칭이 조선이어서인데 그 조선이란 이름은 2000년도 더된 고조선이 아닌 바로 앞 세대 왕조인 조선에서 온 것이다. 2012년판 중학교 5학년용 조선력사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인터넷 아카이브]]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교과서는 북한의 IT 기기 등에서 유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머리말 * 제 1 장. 15 세기 리조봉건국가의 발전 . * 제 1 절. 봉건통치제도의 강화 . 3 * 제 2 절. 15 세기 경계의 발전 . 12 * 제 3 절 . 4군 6진의 설치와 쯔시마원정 . 18 * 제 4 절. 1467 년 함경도농민전쟁 . 22 * 제 2 장. 임진조국전쟁, 청나라의 침략을 물리진 인민들의 투쟁 . 25 * 제 1 절. 1592〜1598 년 임진조국전쟁 . 25 * 제 2 절. 청나라침략을 물리친 인민들의 투쟁 . 36 * 제 3 절. 15〜 16 세기의 문화 . 40 * 제 3 장.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 평안도농민전쟁과 1862 년 전국농민폭동 . 49 * 제 1 절.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9 * 제 2 절. 봉건통치제도의 문란 . 55 * 제 3 절. 1811~1812 년 평안도농민전쟁 . 58 * 제 4 절. 1862 년 전국농민폭동 . 63 * 제 5 절. 17〜19세기 전반기 문화 . 66 * 제 4 장. 외래자본주의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 74 * 제 1 절. 대원군의 개혁과 쇄국정책 . 74 * 제 2 절. 미국침 략자들을 쳐물리친 인민들의 투쟁 . 78 * 제 3 절. 프랑스침략자들을 물리친 인민들의 투쟁 . 83 * 제 4 절. 일본의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 85 * 제 5 절. 임오군인폭동 . 89 * 제 5 장. 갑신정변, 1894 년 농민전쟁과 부르죠아개혁 . 93 * 제 1 절. 개화사상의 발생과 개화파의 형성 . 93 * 제 2 절. 갑신정변 . 98 * 제 3 절. 갑오농민전쟁 . 102 * 제 4 절. 갑오개혁 . 111 실제 북한에서는 조선 왕조를 가끔 '리조봉건통치배'라고 비하하는 등[* 리조는 북한에서는 비하 용어가 아니다. 조선을 국호로 하는 북한 입장에선 자신들과 구분 짓기 위함이다. 사실, 북한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국가인 고구려, 고려 등이라도 왕족 등 지배층은 '봉건통치배'라 부른다.] 조선 왕조의 영향력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는 좀 줄어들기는 했으나 당장 김일성 시대 기준 조선왕조 건국자들인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은 역적 수준으로 취급하는 곳이 북한이다.[* 한때는 북한에선 '5대 역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해당 인물들이 [[김춘추]], [[이성계]], [[정도전]], [[이완용]], [[이승만]]으로 김춘추를 제외하면 조선시대 관련 인물이다. 다만 2012년판 조선력사에서 정도전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려운 등 20년은 넘은 좀 옛날 이야기긴 하다.] 만약의 북한이 지역주의적 성격을 가졌다면 이성계는 함경도 쪽 출신이기에 함흥을 왕조의 발상지라는 뜻의 풍패지향이라고 하는 등 조선이 북방의 왕조라고 이빨을 털 여지가 있겠지만, 현 시대에 가까워 김일성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이라 이를 회피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성계 가문의 고향이던 영흥부에서 따온 '영흥'이란 지명은 [[금야군]]으로 바꿀 정도였다. [[동명성왕]], [[온조왕]][* 두 왕은 전자의 경우 '동명왕'으로 부른다. 왕치고는 취급이 괜찮지만 백결 선생 수준의 분량이며 각각은 솔거보다 분량이 적다.], [[태조 왕건]][* 2012년판 중학 4학년용 조선력사 11페이지에는 김일성의 '인민의 참가없이 세운 부자들의 정권' 같은 디스가 이어진다.] 같은 인물보다도 신라의 [[적고적]]을[* 챕터 하나를 잡고 설명한다. 고구려의 어떤 왕 '동명왕'으로 부르는 동명성왕을 제외하면 광개토대왕조차도 이런 서술은 없다. 남한에서는 [[광개토대왕]]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조선력사에서는 '광개토왕'이라고 부른다.] 훨씬 띄워준다. '경상도 선비'라도 [[강화도조약]]을 언급하며 "[[영남 만인소#s-7|1881년 경상도선비들이 국왕에게 상소]][* 북한의 쇄국정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내용도 구미가 당기는 내용이다.]를 낸데 이어 각지의 애국적인 선비,관리들은 련달아 일본의 침략과《강화도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냈다. 이처럼 우리 인민은 일본군국주의침략의 첫시기부터 그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였다."라고 언급하는 등 지역주의를 싫어한다. 특히 왕은 고구려 왕이라도 가차없이 언급 자체를 거의 안 하거나 잘해봐야 땅은 넓혔구나라고 하는 등 쩌리 취급이다. 기이하게 [[동학농민운동]]을 높게 서술한다. 평안도, 함경도에서 일어난 비슷한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다만 동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편집한 편이기는 하다. 얼마나 이를 자신들의 입맛의 맞추는 방향으로 높게 평가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를 발췌한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 '''《갑오농민전쟁은 19세기 아세아 반제민족해방투쟁의 새벽종을 울린 하나의 력사적사변으로서 중국의 [[태평천국 운동|태평천국농민전쟁]],인도의 [[세포이 항쟁|시파이 폭동]]과 더불어 아세아 3대항전으로 특기할만 한것이였다.》'''[* 정말로 이 부분만 글씨체를 다르게 하고 굵게 하여 강조시켜 놓았다.] > 갑오농민전쟁은 조선력사상 가장 큰 농민전쟁으로서 류례없이 대규모적이고 격렬한 반제반봉건적 투쟁인것으로하여 아시아 3대 항전의 하나로 손꼽히고있다. > 농민전쟁은 1894년부터 거의 1년동안 20여만의 농민군이 참가하여 전라도,충청도,경상도는 물론 경기도와 강원도,황해도, 평안도 등 조선 8도강산을 거의나 뒤흔들어놓았다. > 전쟁기간 농민군은 전라도,충청도에서만도 고부,장성,목천,공주 등 수많은 전투들에서 대포를 비롯한 근대적무장으로 장비된 수백수천의 적정규군대를 살상하였다. 다른 도들에서도 농민군은 수많은 원쑤들을 족쳐댔다. 농민군은 전라도의 중심지 전주를 타고앉았으며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의 지방통치체제를 완전히 마비시켰다. > 농민군을 도저히 이길수 없었던 봉건정부는 그앞에 굴복하여 페정을 고칠데 대한 농민군의 요구를 받아들이였다. > 농민군은 력사상 처음으로 자기들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자치기관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그 활동을 보장하였다. > 이 농민전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정부군과 함께 청나라군대와 1만 명의 일본침략군까지 기여들어 횡포한 무력간섭을 하였다. > 우리 나라 력사에는 [[홍경래의 난|1811〜1812년의 평안도농민전쟁]],[[이시애의 난|1467년 함경도농민전쟁]],[[망이·망소이의 난|12세기 망이농민폭동]]을 비롯한 대농민전쟁,[[적고적|9세기 후기 신라에서의 농민전쟁]] 등 많은 농민전쟁들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갑오농민전쟁처럼 그렇게 큰 흔적을 남기지는 못하였던것이다. >---- > 2012년판 《조선력사》, 중학교 제5학년용, 102~103페이지 중 일부 > 5) 농민전쟁의 실패원인과 의의 > (1) 실패원인 > ① 농민군이 옳바른 투쟁목표와 방도를 잘 알지 못한데 있었다.[* 이런 투쟁목표와 방도를 잘 아는 사람이 김일성의 일가라는 것이 핵심이다.] > ② 농민군이 전략적으로 잘못한데 있다. > ③ 청일 침략자들의 무력 간섭 과 봉건통치배들의 반역 행위에 있었다. > (2) 의의 > ① 근대 우리 나라 반침략반봉건투쟁의 력사를 빛나게 장식하였다는데있다 . > ② 우리 나라 사회발전을 힘있게 추동하였다는데 있다. > ③ 아시아반제민족해방투쟁의 력사적 사변으로 된다는데 있다 >---- > 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력사학습참고서, 교육도서출판사, 2010년 인쇄 조선 왕조 존속 기간이 무려 518년인데 이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면 말 그대로 1392년 이후 역사가 붕 뜨기 때문에 북한이 조선을 부정적으로 평가해도 아예 무시하지는 않는다. 당장 북한의 국호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따라서 북한이 조선 역사를 지울 수는 없기에 조선에 대한 계승 의식이야 가지고는 있지만 남한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흥선대원군의 외세 배척, [[신미양요]] 같이 미국을 비난할 수 있는 등 어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는 사건은 예외다. 삼국시대를 다루는 북한 교과서에서[[https://unibook.unikorea.go.kr/material/view?materialScope=TOT&keywords=%EC%A1%B0%EC%84%A0%EB%A0%A5%EC%82%AC&sortField=publishYear&sortDirection=DESCENDING&page=4&uid=CAT-00000000000272694|#]] [[박제상]], [[솔거]] 같은 인물을 거의 고구려 인물 급으로 서술하거나 자신의 무기개발을 옹호하기 위함인지 신라의 [[천보노]]를 높이 평가하는 등 [[거북선]], [[동의보감]], [[대동여지도]] 같은 조선의 문화 유산도 마찬가지로 서술한다. [[유인석]]도 북한 정부 입장에서 쇄국 정책을 옹호할 근거를 찾을 수 있어서인지 좋아한다. 굳이 차이라면 남한에서는 분단 후에도 [[장화홍련전]], [[봉산탈춤]] 같이 북한 지역이 배경인 이야기[* 이런 건 북한에서는 너무 체제 선전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져 남한이 그 내용을 더 상세히 교육하는 경향이 있다.]를 북한에서 유래한 것인 줄 모르거나 [[계월향]] 같은 평양의 인물에 대한 지식은 아예 떨어졌지만[* 워낙 젊은 세대는 [[변강쇠전]]에서 전라도의 변강쇠와 평안도의 옹녀의 사랑 등 교육에서 남북한이 하나로 살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북한의 정치적 요소만, 그것도 북한 주민을 어떻게 탄압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빼고 무기 개발 같은 대외관계에 관한 부분만 보도되고 집중 교육되는 경우가 많아 역사에 좀 무관심하면 조선시대에 북한 땅에는 아무것도 없던 것이라거나 다른 나라였던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있다. 조선 말기에는 평양이 조선에서 상업이 가장 발전한 곳이었고, [[이제마]]라든가 [[연은분리법]], [[북어]]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함경도쪽 이야기다.], 북한에서는 [[계월향]]이 [[논개]]보다 유명하다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의 북한 지역의 역사를 좀 아는 경향은 있다는 것이다. [각주] [[분류:조선]][[분류:평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