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평가 (문단 편집) === 범죄 수사 === 조선은 범죄의 수사에 있었어도 꽤 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였음을 <[[신주무원록]]>등의 저서를 통해 알 수 있다. [[http://blog.daum.net/spogood/197|신주무원록의 과학성을 엿볼 수 있는 글]]. 검시 체계도 초검과 복검, 삼검에 걸쳐 검시해 초검과 복검의 결과가 일치해야만 사건을 종결하였고 일치하지 않을 경우 삼검도 불사했다. 또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임금에게 장계가 올라가 허락이 떨어져야만 사형을 집행하는 등 생 사람을 잡지 않도록 고심한 노력이 돋보인다. [[영조]] 이래 잔인한 형벌(압슬, 문신)을 금지한 것도 발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동시대 범죄수사의 수법으로 잔인한 고문을 통한 무조건적인 취조가 당연시되던 동시대 다른 국가들 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수사방법이었다. 이러한 조선의 법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조선 시대 최고의 스캔들이었던 '어우동 사건'인데, 이때에도 왕과 신하들이 철저한 법리 공방을 벌인 후에야 법에 따라서 처벌이 이루어졌다.[* ...라기 보다는 사실 이에 대해서 의문이 있는게 신하들은 의견이 갈렸고 왕은 사형을 주장했다. 의견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법에 따라 처벌할 것 또 다른 하나는 법에 따르면 사형이 과하지만 일이 너무 심하니(현직 관료까지 얽힌 사건이었다!) 사형시켜야 한다 둘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가서는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해서 범죄 감면을 받기위해 뇌물을 바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많았다. 주로 군대 징집을 면제받거나 세금 감면, 형벌 감형, 재판 승소 등을 위해 뇌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뭐 동시기 다른 지역서도 벌어지던 일이긴 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