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상현 (문단 편집) == 프로 시절 == [[19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수원 kt 소닉붐|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에 입단했다. 1999-2000 시즌 [[김성철(농구)|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해서]] [[신인]] 시절에 그가 못한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신인]] 시절 성적이 상당히 준수하다. [[수원 kt 소닉붐|골드뱅크]] 시절에는 평균 18.4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이런 활약을 눈여겨 본 [[서울 SK 나이츠|SK]]의 [[최인선]] 감독이 [[현주엽]]과 [[서장훈]]의 포지션 중복과 전문 중거리 슈터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현주엽]]과 조상현의 교환을 제안했고, 마침 팀을 대표하는 특급 스타가 필요했던 [[수원 kt 소닉붐|골드뱅크]]가 이를 수락하면서 [[1999년]] [[12월 24일]], 일명 "[[크리스마스 이브]]의 빅딜"이 단행되어 조상현은 팀을 이적하게 된다. [[파일:조상현 SK 나이츠.jpg]] 팀을 이적하고 나서도 팀의 외곽을 책임지는 슈터로서 활약하며, [[서울 SK 나이츠|SK]]에서도 평균 18.4점을 넣으며 활약했다. [[서장훈]], [[황성인]],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과 같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오히려 슛 찬스가 더 많이 나며 슛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평균 15.5점을 넣으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런데 신인상을 못 받은 것은 초창기 [[KBL]]이 한 팀에게 [[MVP]]와 신인상을 모두 주는 것을 꺼렸기 때문. [[MVP]]가 [[서장훈]]에게 돌아가면서, 신인상은 [[서울 SK 나이츠|SK]] 선수들을 배제하자는 쪽으로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 때문에 조상현은 다소 억울하게 신인상을 놓쳤다. 하지만 조상현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의 조상현은 돌파력과 슈팅을 모두 겸비한 재능 있는 포워드였다. 2000-01 시즌에 평균 20.6점을 넣으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하더니, 2001-02 시즌에는 다시 [[서울 SK 나이츠|SK]]를 챔피언 결정전에 올리는데 기여하면서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한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로 가서 두 시즌의 공백기를 가졌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어서 20년만에 금메달을 함께하면서 병역면제를 바라보게 되었으나 당시 병역법에 발목이 잡히면서 [[상무 농구단|상무]]에 입대하게 되었다. 2년간 공백기를 마치고 돌아와 [[서울 SK 나이츠|SK]]의 주포로서 변함없이 활약했지만, 그 사이 팀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SK는 좀 더 강한 스타를 원했고, 건실하지만 화려한 모습은 적었던 조상현은 좋은 선수지만, 팀의 간판은 아니었다. 결국 새로운 팀의 간판을 원했던 SK의 전략으로 인해 조상현은 시즌 도중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는데, [[수원 kt 소닉붐|KTF]]와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그는 [[황진원]], [[이한권]]과 함께 [[수원 kt 소닉붐|KTF]]로 건너갔다. 대신 SK가 받은 것이 ~~[[유리몸]]~~ [[방성윤]]과 [[김기만(농구)|김기만]], [[정락영]]이었다. 지금도 [[KBL]] 역사에 손꼽히는 빅딜이고, 그러고 보면 [[KBL]]의 빅딜에 꼭 조상현이 끼어 있다. [[파일:LG 조상현 선수.jpg]] 반 시즌을 [[수원 kt 소닉붐|KTF]]에서 보낸 조상현은 그러나 [[FA 제도|FA]]가 되자 팀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이적을 하게 된다. 이 때,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 당시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이었던 [[신선우]]는 [[FA 제도|FA]] 영입을 위해 기발한 시간차 트레이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먼저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조우현]], [[정선규]], 정종선을 보냈다. 그리고 FA 영입을 하자마자 1+현금:4 트레이드로 황성인을 내주고, 전자랜드로부터 [[박지현(농구)|박지현]], [[박훈근]], [[박규현]], [[임효성]]을 받았다. 이 때문에 [[수원 kt 소닉붐|KTF]]는 보상 선수로 평균 득점 0.9점의 [[임영훈]]을 찍어야 하는 [[안습]]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를 이용해 손실없이 그를 영입했다. 영입 첫 해에는 평균 12.0점을 넣으며 부족하지만 그래도 쏠쏠했고, 팀도 [[퍼비스 파스코]]의 폭행 사건이 아니었다면, 챔프전 진출도 노려볼 정도의 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2006-07 시즌 이후로는 쭉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나이가 들고, 3점슛 길이가 길어지면서 점차 장기였던 3점슛의 적중도는 떨어지고, 돌파력도 예전같지 않은 것. 2006-07 시즌에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면서 활약한 것은 [[2012년]] 시점에서 볼 때, 최후의 불꽃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사실상 준주전이나 [[식스맨]]에 더 가까운 상황이다. 즉, 결론적으로 [[창원 LG 세이커스|LG]]의 조상현 영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 다만 [[이재도]], [[이관희]]보다는 못했을지는 몰라도, [[서장훈]], [[김현중(농구)|김현중]], [[전형수]], [[조성민(농구)|조성민]] 보다는 나은 활약을 해줬다. 결국 [[2011년]] [[오용준]]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팀을 옮겨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젊은 팀이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팀에 부족한 3점 슈터로서 [[식스맨]]으로 나와 활약하고 있다. 오랜 선수 생활 동안 꾸준히 기록을 쌓아서 3점슛 1,000개 돌파, 통산 6,000득점 돌파를 이뤘다.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선수에서 [[은퇴]]를 발표하면서 정들었던 코트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이 해 은퇴경기에서 마지막 3점슛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