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불수호통상조약 (문단 편집) == 배경 == 프랑스는 조선과 국교를 맺으려고 하였으나, 1866년 [[병인양요]] 이후에는 조선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1839년 프랑스인 선교사제 3명[* 성(聖)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 [[피에르 모방|성 모방 나 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이 순교한 [[기해박해]]와 1866년 프랑스인 선교사제 9명[* 성 베르뇌 장 시메온 주교(서울대교구 제4대 교구장),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 푸르티에 신 요한 신부, 프티니콜라 박 미카엘 신부, 성 위앵 민 루카 신부, 성 오매트르 오 베드로 신부, 성 브르트니에르 백 유스토 신부, 성 도리 김 헨리코 신부, 성 볼리외 서 루도비코 신부]이 순교한 [[병인박해]] 이후 [[조선의 천주교 박해]] 문제로 인한 마찰로 조약 체결이 지지부진하였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섭정 밑에서 강력한 쇄국정책이 추진되고 있었으나, 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고,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통상을 허락하면서 정세가 바뀐다. 이후 1882년에는 조선과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서양과도 수교하게 되었고, 프랑스도 조선과의 조약 체결에 뛰어들게 되어 병인양요 이후 20년 만인 1886년에 조선과 정식으로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한편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순교했던 프랑스인 사제들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시성]]되었다([[한국 103위 순교성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