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덕인 (문단 편집) === 당나라 시기 === 곽우가 조덕인으로부터 형남 번진을 탈취한 후, 진종권이 최근에 여러 차례 계속해서 당나라의 선무군 절도사(宣武軍節度使) [[주전충]]과의 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하자, 진종권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조덕인은 [[888년]], [[5월 6일]]에 그의 번진을 가지고 당나라에 투항하면서, 당시의 당나라 황제인 당 소종 및 주전충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주전충은 소종에게 조덕인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조덕인을 진종권 토벌 작전에서 자신의 부관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였다. 소종은 산남동도 번진에 충의군(忠義軍)의 군호(軍號)를 하사하여 조덕인을 해당 번진의 절도사로 삼는 한편, 채주사면행영부도통(蔡州四面行營副都統)의 직책을 제수하였다. 진종권이 그 자신의 부하 장수의 배반으로 붙잡혀 주전충에게로 압송된 이후 조덕인은 중서령(中書令)이라는 명예 재상 직함을 하사받았고, 회안왕(淮安王)에 봉해졌다. 이후 조덕인은 [[892년]] [[2월]]에 병사했고, 충의군 번진은 그의 아들 조광응이 물려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