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계현 (문단 편집) === [[KIA 타이거즈]] 1기 시절과 [[삼성 라이온즈]] 시절 === ||||<#f01e23>{{{#ffffff KIA 타이거즈 No.77}}} || ||||<#09081c>{{{#ffffff 조계현(趙啓顯)}}}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50120160406001.jpg]] || || (출처 : 포토로) || 6년만에 친정팀 코치로 다시 시작된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074CA1> {{{#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7}}} || ||||<#c0c0c0> {{{#000000 조계현(趙啓顯)}}} || ||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322131027010.jpg]] || || (출처 : 포토로) ||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2001년 시즌을 마치고 두산에서 방출되어 은퇴한 후 2002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의 해설위원으로 있었고 2003년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영입되어 6년 만에 친정 팀으로 돌아와 2005년까지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이 당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는데, KIA 투수코치 시절에는 [[김진우(1983)|김진우]]에게 너클볼을 장착시키려다 제대로 망한 전적이 있고 삼성에서는 [[윤성환]]을 조련시킨 것을 제외하면 잉여 투수들을 올리고 털리느라 팬들로부터 까였다. 특히 2009 시즌에는 [[조현근]]-[[최원제]]-[[김상수(투수)|김상수]] + [[박성훈(야구선수)|박성훈]]-[[차우찬]], 소위 '''[[조원수박차]]'''라 불리는 ~~화약고~~ 미완성된 투수들을 심심할 때마다 올리고 털리는 일을 반복하여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후 위의 잉여 라인(...)에서 [[조현근]]은 2009 시즌 후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으나 군 복무 중 2군 리그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제대 후 토미 존 수술까지 받고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2016 시즌 후 방출당한 후 은퇴했고, [[최원제]]는 군 제대 후 결국 타자로 전향했다. [[김상수(투수)|투상수]]와 [[박성훈(야구선수)|박성훈]]은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됐다. 그나마 [[차우찬]]이 이듬해인 2010년 승률왕에 오르며 포텐이 터지긴 했는데, 이쪽도 이후 6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는 등 2년 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다가 2013년부터 삼성의 주축 투수로 활동하며 2015년에는 탈삼진왕에 올랐고 시즌 후 [[2015 WBSC 프리미어 12|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2016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무려 '''4년 95억'''~~이라고 쓰고 110억이라고 읽는다~~이라는 대박을 터뜨리며 LG로 이적했다.~~막내가 가장 출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투수코치로 있을 때 성장한 [[윤성환]]은 조계현과 마찬가지로 빠른 구속보다 뛰어난 제구력으로 타자와 승부하는 타입이다. 하지만 [[윤성환]]은 다양한 변화구보다는 속구-커브의 투 피치로 타자와 승부할 때가 많다는 게 차이점. 결국 팬들의 열화 끝에, 2009 시즌 막판에는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갔다. 이후 [[김용국(야구)|김용국]]과 함께 2009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했고, 삼성 팬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의 후임으로 [[오치아이 에이지]]가 온 후 삼성의 불펜진이 철벽 포스를 내뿜기 시작하자, 조계현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용국은 나중에 [[류중일]] 감독이 요청하여 복귀하긴 했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