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각 (문단 편집) ==== 근세 ==== '''[[르네상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상과 [[다비드상]]'''이 대표적이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만 다빈치는 직접 남긴 조각품이 없고, [[인체]] 비례와 같은 조각의 필수 요소를 연구했다.]의 시대다. 이 시기의 조각가들은 그리스-로마 시절의 조각풍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권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물론 생각만큼 많이 잃지는 않았다. 여전히 [[교황]]의 권한과 권위는 막강했으며, 여전히 시민들은 기독교적 윤리관에 맞춰 살았다. 당장 미켈란젤로의 조각들도 죄다 [[성경]] 속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그동안 기독교 사회에서 우상 숭배라고 멀리시 된 고대식 조각[* 사실 대외적으로나 그렇지, 이전 시대의 조각상들을 선호했던 사제들은 종파 가리지 않고 있었다.]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귀족들은 열성적으로 조각가들을 후원했으며, 시민들을 세금을 털어 자신들의 도시에 훌룡한 조각상을 하나라도 더 전시하고자 했다. [[파일:프란체스코 케를로.jpg|width=600]] 이 시기의 조각품들은 제작자들이 그토록 동경했던 그리스 시대의 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위 사진은 '프란체스코 케이롤로'라는 당시 조각가의 <환멸>이란 작품으로, 언뜻 조각상에 그물을 씌운 것으로 보이지만 '''저 그물도 조각의 일부다'''. '''심지어 인물 부분과 통짜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청출어람|알려진 바가 없으며]], [[3D 프린터]]의 발명 이전에는 복제는 어림도 없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림으로써, 앞서 말한 동아시아의 [[불상]]과 크메르 제국을 비롯한 남아시아의 [[힌두교]] 석상이 서양에 소개된 시기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