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식물) (문단 편집) == 재배사 == 외떡잎식물 [[벼]]목 벼과의 한해살이풀로 원산지는 [[동아시아]]이다. [[부산광역시]] 동삼동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발견된 토기에서 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곡물자료 중 하나이다. [[기장(식물)|기장]]과 함께 가장 오래 전부터 농사지어 먹어온 곡식으로, 관개기술이 발달하여 논벼의 생산력이 월등히 높아지기 전까지는 좁쌀은 가장 중요한 주식용 곡물이었다. 연중 강수량과 일조량이 일정하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는 [[밀]]이나, 폭우와 무더위는 잘 견디지만 가뭄에 약한 [[벼]]와 달리 조금 더 마르고 척박한 들판에서도 잘 자라는데 이는 잡초인 강아지풀을 길들인 것이라 생명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서 조잡한 영농기술로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있는 곡물이었다. [[한민족]]은 고대부터 조를 [[오곡]][* 五穀: 쌀/보리/조/콩/기장을 뜻하는 단어이다. 곡식 곡(穀)자에 벼 화(禾)와 함께 만물을 움직이는 동력인 기운 기(氣) 및 쌀 미(米)자가 받침으로 들어있다.]의 일부로 분류하는 등 중요한 식량원이자 먹어도 질리지 않는 주요 곡식으로 삼았다.[* 오곡이 아닌 곡식은 오래 먹으면 질린다고 하여 늘 먹는 주식으로는 기피했는데, 여기에는 밀/피/팥/수수/옥수수 등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에서 평민들의 주식으로 사용되었던 곡식으로[*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08_0070_00205|#]]] 당시는 관개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강에 접한 평야에서나 나는 쌀은 귀족들의 차지였고, 평민들은 건조한 밭에서 나는 조로 밥을 지어먹었다.[* 이건 옛 고구려 영토 중 알부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북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민들의 주식이 좁쌀에서 옥수수로 바뀌었을 뿐이며, 현재도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는 잡곡밥을 지을 때 좁쌀을 즐겨 넣는다. 본래 고구려의 영역인 만주 일대는 예로부터 좁쌀 농사가 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중국에서도 좁쌀은 평민과 사대부 할 것 없이 가장 흔하게 먹는 곡식 중 하나였고, 상주 교체기때 상나라의 충신이었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관부에서 주는 좁쌀을 거부해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춘추전국시대]] 때에는 군주가 신하들에게 봉록으로 내리는 하사품 중 하나였으며, 그 밖의 공로가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리는 경우에도 대량의 좁쌀을 주었다. [[공자]]도 [[노나라]]에서 대사구벼슬을 하던 시절에도 녹봉으로 좁쌀 6만섬을 받았고, 좁쌀밥을 주로 먹었다.[* 공자의 인간적인 일화 중에 하나가 바로 제자들과 길을 떠나다가 굶주리고 날이 저물어 한 민가에 노파에게 하룻밤 의탁해 저녁으로 좁쌀죽을 얻어먹은 일이다. 제자들은 궁하디 궁한 좁쌀죽에 불만을 표했지만, 공자는 "너희들에겐 노파의 친절이 보이지 않는게로구나. 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라며 그들을 달래었다. 공자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생활을 했고, 또 관직에 나간 뒤에 항상 남들의 시기와 견제를 당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순수한 호의로 내어주는 음식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나라]] 또한 한단 지역을 중심으로 보리 농사와 조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국력을 쌓을 수 있었고[* 조나라는 지금의 [[산서성]]과 [[허베이성]] 일대를 영토로 하여 북방에서 특히 농사가 잘되는 곳 중 하나였다. 삼국시절 하북을 제패한 [[원소]]의 근거지도 바로 이 지역이다.], 최대의 국력을 자랑한 [[진나라]]도 [[영정]] 시절에 [[관중]] 지역에 정국거 운하를 건설하여 대규모 조밭을 개간해 6국통일을 위한 군량을 모았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기원전 시대를 다룬 중국 사극에서 군대가 쌀밥이나 찐빵을 먹는 것은 고증오류이다. 당시의 군대는 대부분 조밥이나 수수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염파]]의 사례를 보듯, 쌀밥은 왕족이나 귀족들이 먹곤 했다. 중국인의 식단에 쌀밥이 일상적으로 포함되는 것은 남북조 시대에 강남 지방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이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