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젠트리 (문단 편집) === 젠트리 주류는 [[지방]] 대[[지주]] === 평민 중 일부 [[상인]]이나 [[법률가]]로 올라선 중산계급이 젠트리화되기도 했다. 훗날 [[청교도 혁명]]의 [[올리버 크롬웰]]은 그러한 신흥 젠트리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올리버 크롬웰은 [[토머스 크롬웰]]의 모계 방계 친족인데, 그 시조는 본래 한미한 출신이었으나 토머스 크롬웰의 누이와 결혼하면서 토지재산과 권력에 처음 접근하였으며, 조상들이 대대로 법률가나 군인, 정치인 등 능력으로써 출세하여 그의 시대에는 이미 수대에 걸친 헌팅던의 명사이자 대지주였고, 그 자신도 법관이자 군인이었다.] [[인클로저 운동]]의 주체도 바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젠트리 계층의 다수는 '''[[시골]]에 일정규모 이상 토지를 보유한 [[지주]]들'''이었다. 대도시의 [[지식인]] 계층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아서 [[교수]]나 [[판사]], [[성직자]], [[장교]],[* 예컨대 크롬웰만 하더라도 잉글랜드 내전기 동안 여느 지휘관들이 그러하듯 자기 재산으로 [[기병]]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귀족이나 젠트리 반열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공한 상공인 등이 되어 기존 지배층과 통혼하거나 정치적으로 의회 권력에 진입한 것이지, 평범한 상인들이 [[런던]] 시내에서 장사하다가 벼락출세한 케이스는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그래서 신흥 젠트리 계층들도 기존 젠트리 처럼 지주 처럼 되려 지방의 농장을 사려고 하거나 전통 젠트리와 혼맥을 맺으려 혈안이었다. 이는 [[영국 내전]]과 청교도 혁명기에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의회를 차지한 젠트리들 중엔 보수적인 시골 지주들이 많았다. 그래서 젠트리는 종교 개혁을 열렬히 지지한 걸로 알려져 있으나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가톨릭]]을 고수하는 젠트리도 상당수 있었고, 종교에 열성적이지 않은 대다수의 무리들은 [[잉글랜드 국교회]]로 편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