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젠트리 (문단 편집) === 젠트리의 대두 === 그 결과,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적인) [[귀족]] 계층을 대신할 사회 지배계층으로서 젠트리가 [[튜더 왕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는 [[귀족]] 대신 [[부르주아]]가 새로이 주도권을 잡았던 대륙하고는 사뭇 다른 현상이었다. [[프랑스 왕국|프랑스]]에서는 [[귀족]]과 [[부르주아]]의 갈등으로 [[프랑스 혁명|혁명]]이 일어나고 [[독일]]에서는 부르주아들이 합법적으로 귀족 작위를 사서 편입하였으나, [[잉글랜드]]에서는 젠트리가 주도하는 형태의 정치 형태가 발전하였다.[* 이러한 차이에 관하여, 귀족과 비귀족 간 인구 차이는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도 [[구체제]] 붕괴 전까지 왕족과 귀족, 성직자 모두 합쳐서 전체 인구의 2% 남짓이었는데, 비록 잉글랜드가 특유의 귀족제 탓에 이보다도 훨씬 적은 귀족수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전체 인구보다 귀족이 적다는 특징은 프랑스도 매한가지였다. 특히 군대나 성직, 재력 등으로 그 지위를 얻은 신흥귀족(법복귀족) 대신 오랜 혈통에 근거한 전통귀족(대검귀족)만을 헤아린다면 훨씬 그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양국 간 권력의 개방성에 대한 차이가 상이한 결과를 낳았는데, 프랑스에서는 차츰 기득권 강화를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심화되면서 이것이 신분 상승의 막차를 타지 못한 채 남겨진 나머지 [[부르주아]]의 반발을 야기하였고, 잉글랜드에서는 의회와 내각에 젠트리의 진출이 허용되고 부르주아도 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에 극단적인 형태로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다.] [[튜더 왕조]]의 [[헨리 8세]]가 주도한 [[종교 개혁]] 당시, [[잉글랜드]]의 [[가톨릭]] 교회와 [[수도원]]이 가지고 있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국유화]]하여 매각하자 이를 헐값으로 얻은 젠트리 계층이 종교개혁을 지지했으며, 젠트리는 이를 통해 크게 성장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미 그 전부터 젠트리 계층은 사회 지도계층이었다.''' 국유 자산을 매입할 수 있는 재력이나 [[권력]]은 극소수의 전통 귀족을 제외하면 나머진 대부분 젠트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흥 상공업자가 성장하여 젠트리 계층에 편입된 경우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런던 시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젠트리 집단이 대륙의 [[복음주의]] 신학에 공감했다고 보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