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젠트리 (문단 편집) === 둘째부터 젠트리화 === [[귀족]]의 자제지만 작위가 없는 차남 이하의 후손들은 3대째가 되면 자연스레 젠트리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말버러 [[공작(작위)|공작]]의 손자 [[윈스턴 처칠]]이 예인데 처칠의 아버지는 공작의 삼남이라 법적으로는 평민일지라도 귀족가의 자제로 대우를 받았지만, 윈스턴 처칠은 자연스레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평민으로 취급받는데, 이런 사람들이 젠트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공작가의 손자이며 아버지가 재무장관을 지내고 [[샌드허스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33세에 장관을 맡는 [[금수저]]이며 사회적으로도 우대받는 계층을, 조선시대의 [[중인]]이나 부농으로 오해하는 것은 상당히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앤 불린]]의 불린 가문을 들 수 있다. 앤의 할아버지 윌리엄 불린은 부유한 상공인으로 젠트리에 속하였는데 아들 토머스 불린이 당시 잉글랜드의 유일한 공작 가문 [[토머스 하워드]]의 여동생과 결혼하였고,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며, 앤 불린이 [[왕비]]가 되자 백작 작위를 수여 받았다. 그러므로 젠트리들은 귀족과 통혼이 가능한 명문가이지, 과거 우리나라의 [[중인]] 신분같은 중간 계급이 아니다. 중세 시절 [[기사]]나 [[에스콰이어]]는 [[귀족]]으로서의 지위는 없으나,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받은 계층들은 지방에서 토지를 소유한 [[지주]]였다. 대체로 연수입 20파운드가 넘는 지주여야 젠트리 계층으로 포함되었다.[* [[요먼]] 같은 경우는 연수입 2파운드 이상이어야 했다.] 훗날 사회상이 변하면서 도시의 유력계층이라 할 수 있는 상공인, [[교수]], [[법률가]] 등도 출세하여 의회에 진입하며 젠트리화되었고, 기존 지방 대토지 소유 젠트리의 인적구성이 변모했다고 보면 된다. 노르만 왕조 초기에는 국왕의 직접봉신이면 누구나 남작을 자처할 수 있었고, 기사 봉토를 가졌으면 누구든 기사였으나, 13세기 후반에 국왕법정과 의회제도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체제가 완성되면서 의회에 상원으로 소집되는 70여 명의 최고위 귀족들만이 남작으로 인정되었고, 연 토지수입 40파운드 이상에 카운티 법정의 배심원으로 소집되는 수백 명의 상류층 지주들만이 기사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영주권(lordship)을 가졌으나 남작이나 기사와 같은 공적인 의무와 권리를 가지지 않은 대다수의 지주들은 향사(esquire)로 분류되었다. 법적인 신분은 소작농이지만 사실상 지주나 마찬가지로 드넓은 소작지에 재소작을 주고 대부분의 수확물을 시장에 팔아서 재산을 축적하며 귀족과 같은 생활을 하는 부농은 프랭클린(franklin)으로 분류되었다. 잉글랜드의 의회는 초기에는 남작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에드워드 1세 시기부터 기사 74명(각 샤이어 당 2명), 부르주아 80명(각 도시 당 2명), 하급 성직자 148명으로 구성된 하원이 정기적으로 소집되기 시작했고, 1275년 웨스트민스터 법령은 '왕국 공동체(community of the land)의 조언(counsel)과 승인(assent)으로' 공포되었다. 1297년 에드워드 1세는 마그나카르타를 최종적으로 인정했고 의회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1320년경에 쓰인 <의회를 여는 방법(Modus Tenendi Parliamentum)>이라는 책은 '왕국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사와 부르주아들이 이미 위대한 백작들보다 왕국에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상류층 계급 구분도 [[흑사병]]과 [[백년전쟁]]을 거치면서 빠르게 와해되었다. 지주들이(배심원의 의무 때문에) 기사 직위를 기피하기 시작하자 14세기 후반부터는 향사들도 배심원으로 소집되었고, 영주권보다는 노동하지 않고 지대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15세기 중반부터는 영주권을 가지지 않은 단순 토지보유자나 심지어 소작지를 보유한 프랭클린들도 젠틀맨(gentleman)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지주 명문가 계층(gentry)의 말석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중세부터 시작된 계급 명칭의 인플레가 계속 반복되다 보니 처음에는 기사도 향사도 못 되는 하급 젠트리라는 의미로 시작된 젠틀맨이 나중에는 상류층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 하급 젠트리인 젠틀맨과 상류층 농민인 프랭클린([[요먼]])을[* 기존 어휘인 프랭클린이 새 어휘로 대체되어, 15세기 이후에는 주로 요먼이라 불리게 되었다.] 구분하는 기준은 토지나 재산의 크기보다는 우선 직접 노동을 하느냐의 여부, 그리고 젠트리다운 취미활동과 사회활동을 하느냐의 여부였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매튜(James Mathewe)라는 요먼은 1591년 사망하면서 1100파운드 이상의 동산을 유산으로 남길 정도로 대단히 부유한 지주였지만 젠트리처럼 살지 않고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농사일을 했기 때문에 요먼으로 지칭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