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중원 (문단 편집) ==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간의 정통성 논란 == [[세브란스병원|연세의료원]]과 [[서울대학교병원]] 사이에서 현재 제중원의 정통성에 관한 논란이 있다. 제중원이 한국 현대 [[의학]]의 발상지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인 점도 논란에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문제도 있는데, 서울대설 지지측은 제중원이 순전히 북장로회가 운영한 것이라면 한국의 현대의학 도입은 외국인에 의해 [[식민사관|타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된다며, 조선 조정의 능동성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측면에서 제중원이 국영기관이었음을 강조한다.] 결과만 보면 2011~2012년 세브란스에서 서울대 쪽에서 내민 증거를 모두 반박하고 추가자료가 발견되면서, 제중원은 세브란스의 전신이라는 결론을 지으며 논란이 마무리되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선시대 서양의학의 발상지는 수신사로 왔던 해군 군의관 야노(矢野義澈)에 의해 설립된 1877년 부산제생의원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부산제생의원은 부산부립병원을 거쳐서 부산대학교병원의 전신이 된다. 이곳에서 지석영은 종두법을 배우고 전국에 전파했다.] 연세대 측에서는 제중원의 설립년도인 1885년을 대학 설립년도로 기념하고 있는 만큼, 정통성 논란은 예민한 문제이기에 적극적으로 서울대의 주장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대학교병원측에서는 [[홈페이지]]에서 밝힌 연혁에 따르면 제중원이 설립된 [[1885년]]을 [[http://www.snuh.org/content/M005002002.do|기원]]으로 하고 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제중원과 현 서울대학교와의 연관성에 관한 게시물을 제작해 홍보하고 있다. #.[[http://www.snuh.org/board/B001/view.do?bbs_no=56&pageIndex=1&restrictedBbsType=&viewType=&cate_cd=&searchKey=all&searchWord=|제1편 제중원은 과연 누가 설립했는가?]] #.[[http://www.snuh.org/board/B001/view.do?bbs_no=55&pageIndex=1&restrictedBbsType=&viewType=&cate_cd=&searchKey=all&searchWord=|제2편 제중원 운영권은 왜 미국 북장로회에 이관되었나?]] #.[[http://www.snuh.org/board/B001/view.do?bbs_no=54&pageIndex=1&restrictedBbsType=&viewType=&cate_cd=&searchKey=all&searchWord|제3편 제중원은 왜 지금도 중요한가?]] 일단 [[서울대학교]]에 의하면 제중원은 왕립기관이었고 당시 선교회는 '''위탁 운영'''만 했지 소유권은 가지지 않았으며, 이후 고종령으로 제중원 운영권은 선교회로부터 회수되었기 때문에 연세의료원의 주장은 억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Q. '''알렌이 제중원을 설립했다는 주장은 사실인가요?''' > >A.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은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발발 당시 일본인을 제외하면 조선에 거주하던 유일한 양의(洋醫)였습니다. 그는 갑신정변 때 큰 부상을 입은 정계의 실력자 민영익을 치료했습니다. 그로 인해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서양식 국립병원의 설립을 편지로 건의했습니다. 이렇듯이 알렌이 제중원 개원에 기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조선정부는 이미 근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양의료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 알렌의 건의가 도움이 된 것입니다. >----- >[[http://www.snuh.org/board/B001/view.do?bbs_no=52&pageIndex=1&restrictedBbsType=&viewType=&cate_cd=&searchKey=all&searchWord=|짧은 문답식으로 풀어보는 제중원의 진실]] >Q.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맞는지요?''' > >A. 자의적인 역사인식입니다. 제중원 의료진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동함으로써 제중원 운영이라는 경험적 자산이 세브란스병원에 전수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세브란스병원이 직접적으로 제중원을 계승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국립병원 제중원을 수탁 운영하던 사람들이 자금을 마련하여 1904년에 자기네 병원을 완공하고 독립한 후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병원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대한제국의 요청으로 제중원을 반환했습니다. 그러고는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새 공식 명칭과 ‘제중원’이라는 종전 근무지의 명칭을 병용(倂用)한 경우입니다. “제중원”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하여 세브란스병원과 선교사업을 활성화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 >[[http://www.snuh.org/board/B001/view.do?bbs_no=52&pageIndex=1&restrictedBbsType=&viewType=&cate_cd=&searchKey=all&searchWord=|짧은 문답식으로 풀어보는 제중원의 진실]] 그러나 [[연세대학교]] 측은 서울대학교가 1946년 개교 당시 일제가 설립한 학교들의 연속이 아닌 새로 출발하는 대학으로 시작하였고, 그래서 1954년에는 세브란스의대 70주년 축하 광고까지 보내주다가 1978년부터 갑자기 국가 중앙 병원으로써 가치를 되찾기 위해 과거를 거슬러 대한제국의 의료기관인 제중원과 일제가 설립한 대한의원을 자대의 역사에 편입하며 기원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한다. --결국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싶은 서울대학교--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측은 [[제국대학]]의 정체성을 계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종합대학교로서 서울대는 1946년 개교를 연혁의 시작으로 삼고 있지만, 단과대 별로는 그 시작점을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가령 법과대학 측은 1895년 세워진 '''법관양성소'''를 기원으로 잡고 있고, [[사범대학]]은 1895년 '''한성사범학교'''를 기원으로 별도로 자리잡고 있다가 국립 서울대학교로 모여졌다고 설명하고 있는 식이다.[[http://snu.ac.kr/history|#]] 의과대학 측도 대한의원 교육부-경성제대 의학부를 거쳐서 1946년 서울대학교로 편입되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인 만큼, 서울대가 경성제대의 정체성을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의 정통성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연세의료원 측의 반박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연세의료원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Q. 서울대병원은 어떤 근거로 제중원이 자신들의 뿌리라고 주장하는가? > >A.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의 연속성을 말해주는 사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의 시작이 조선의 정부기관이므로 '국립'병원의 맥을 잇고 있다는 논리만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서울대병원과 제중원 간의 연속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논리이다. 국립기관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제중원과의 연관성을 주장한다면, 동일한 국립인 경북대학교, 부산대학교 등 국립대에 속한 의과대학 모두가 제중원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단, 부산대학교병원은 제생의원과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이건 주장 수준이 아닌 팩트기도 하고. 단, 다른 점은 제중원은 대한제국 자본으로 세워졌지만 제생의원은 [[부산광역시|도시가 도시이고]] [[구한말|시기가 시기인 만큼]] 일본 자본으로 세워졌다.] >----- >[[http://www.yuhs.or.kr/history/|세브란스 역사관]] >Q.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연속성을 말해주는 자료는 무엇인가? > >A. 서울대병원 측은 제중원 운영권이 선교부로 넘어온 1894년 이후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전하는 1904년까지도 제중원이 조선정부 소유라고 주장하며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은 무관한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을 말해주는 자료는 무수히 많다. 세브란스병원, 조선정부, 민간, 일본정부 등의 자료들이 모두 그렇다. 먼저 1902년 세브란스 병원 정초식 초청장에는 “새로 짓는 제중원(세브란스 씨 기념병원)”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 1906년 6월 4일자 관보에는 대한제국 정부가 세브란스 병원을 제중원이라 부르며 제중원 찬성금 3000원을 지급한다는 기사가 나온다. 당시 정부가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을 인정한 것이다. 또 1922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세브란스 병원을 제중원으로 부르고 있다. 일본 후생성이 발행하는 「일본의적록」(1925년) 역시 세브란스병원이 제중원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세브란스의 내부 자료에서는 예외 없이 제중원을 세브란스의 기원으로 표기해왔다. >----- >[[https://yuhs.severance.healthcare/yuhs/history/jejungwon.do| 제중원 바로알기]] 위의 자료들은 세브란스 병원의 여인석 교수가 <제중원 뿌리 논쟁>이라는 책으로 2015. 04. 06.에 정리하여 발간하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969095|제중원 뿌리논쟁]]. [[분류:의료]][[분류:1885년 설립]][[분류:연세대학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