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주특별자치도/정치 (문단 편집) === 헬게이트 지방선거 - 궨당 ===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부터 제주도는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만 하면 인맥, 친목 등으로 다져진 사람들이 출마하여 선거에서 지옥문이 열리곤 했다(...) 원인은 섬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한 얽히고 결집력 높은 관계망을 들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정당은 궨당'''[* 친척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괸당’이라고도 부른다. 유래는 권당(眷黨)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이라는 말은 이미 육지에서도 유명하다. 친한 친구들도 알고보니 부모님 친구 딸/아들인 경우도 다반사. 결혼식에 신랑 측 친척으로 갔더니 신부 측 친척에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이야기거리도 안 된다. 접촉사고로 광양 로터리서 멱살잡이 했던 사람이 여자친구 집에 인사하러 갔더니 사윗감--= 그때 그 젊은 놈--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는 이주민이 증가하였고 꽤 많은 시민들이 궨당에 의존하면 안 되는 생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주도로 이주한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가 아닌 원래 자기 고향 이야기나 정치 성향을 자꾸 이야기 하면서, 궨당 현상이 오히려 부활하는 경우도 많다.[* 제주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주민이 그런 말을 꺼내면 '''몇년 살다가 제주사람 돈만 챙기고 육지로 도로 도망가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란 궨당 때문에,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무소속]]이 강세라는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최후로는 양자 무소속 매치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도 나타났다. 양자 공천 탈락에 의한 '누가 이겨도 미래는 없는' 선거였고, [[우근민]] 후보가 당선되었다. 무소속 강세와 더불어 소지역주의도 강하다. 대표적으로 특정 후보가 출신 지역에서 득표율 70% 이상을 독점하는 것이 있다. * [[2006년]] [[4회 지선]]에서 [[김태환(1942)|김태환]] 후보는 출신지 구좌읍에서 69.5%를 득표했고 [[현명관]] 후보는 출신지 성산읍에서 69.0%를 득표했는데, 서로 이웃한 동네(...)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제주도 동북부 전체에서 김태환 후보가 이기고 동남부 전체에서 현명관 후보가 이긴 것도 덤. * 5회 지방선거 때에도 우근민 후보가 출신지인 우도에서 83.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비슷하게 제6대 지방선거에서도 [[원희룡]] 후보가 출신지인 중문 일대에서 70%대 득표율을 기록했다. 물론(?) 그 전의 지방선거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또 일부 학교 출신 인물들이 득세한다고 내부에서도 비판이 많다. 대표적으로 오현고가 있는데, 근 몇번의 선거간 [[오현고등학교]] 출신 국회의원은 한 명 이상 있었고[* 역대 제주도 국회의원은 2명에서 3명 사이이므로 상당한 비율이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는 오현고 동문회에서 '동문끼리 서로 돕자'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사전 선거 운동으로 판결났다. 과거엔 해먹는 사람이 계속 도지사를 하고, 또 하려고 출마하는 일이 잦았다. 원희룡 지사 부임 이전만 해도, 6번의 민선 도지사는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도지사 3명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우스개로 제주판 [[삼김시대]]라고 한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김씨는 1명 뿐인데 무슨 3김이야!!!]]-- 보통 다른 지역이 이렇다면 오래 연임을 한 경우겠지만, 제주도에서는 아니다. 관선 27, 28, 민선 32, 33, 36대는 우근민 전 지사가,[* 처음 도지사 업무를 수행한 때와 마지막으로 수행한 때의 차이가 무려 23년이다.] 관선 29대, 민선 31대는 신구범 전 지사가, 민선 34, 35대는 김태환 전 지사였다. 당선 외에 출마까지 포함하면 제주도의 과점 상태는 매우 극심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제주 3김'을 제외하면 [[현명관]] 정도다.], 나쁜 의미에서 인물만 보는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제주 3김'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중앙정당의 입당/탈당/무소속 출마도 밥먹듯이 했다. 제주도민 입장에선 자신이 지지하는 중앙정당의 색깔을 도정에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3인의 정당 경력이 다들 워낙 화려(...)하여 전부 기술한다. * 우근민: [[민주자유당]](낙선)-[[신한국당]]-[[새정치국민회의]](당선)-[[새천년민주당]](당선)-[[열린우리당]]-[[무소속]]-[[민주당(2008년)|민주당]](낙천)-[[무소속]](재당선)-[[새누리당]](민주당 지도부의 입당 거부 후) * 신구범: [[무소속]](당선)-[[새정치국민회의]]-[[무소속]](우근민 입당 후 경선 패배)-[[한나라당]](낙선)-[[무소속]]-'''[[창조한국당]](제주창조당)'''-[[무소속]]-[[새정치연합]]-[[새정치민주연합]](낙선)-[[무소속]]-[[태극기 부대]] * 김태환: [[새정치국민회의]]-[[무소속]](우근민 입당 후, 2회 당선)-[[한나라당]]-[[새누리당]]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원희룡 후보가 60%의 높은 득표율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구범 후보를 두배가 넘는 득표로 크게 제치고 도지사에 당선되었다. 다만 이는 제주도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으로 변하거나, 그만큼 새누리당을 지지해준게 아니라, 전적으로 원희룡이라는 개인의 힘[* '''[[학력고사]] 전국 수석 → [[사법시험]] 수석''' 이라는 화려한 학업 커리어 덕분에 제주도의 토박이 중장년층에게 원희룡의 인지도와 인기는 당적을 초월한 수준이며, 그 전설을 어릴 때부터 들어온 청년층 역시 일명 ‘[[남경필|남]][[원희룡|원]][[정병국|정]]’으로 대표되는 소장파 개혁보수 스탠스의 원희룡에 대해 꽤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쭉 도지사 자리를 차지하던 특정 지역 유지들, 일명 '''[[삼김시대|제주 3김]]'''에 대한 반감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주 지지층인 20대~30대들은 이들 '제주 3김'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신구범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도지사 후보가 되면서 그 반감이 절정에 달하여 20대~30대 표심이 원희룡 후보쪽으로 많이 이동했다. 그만큼 정당보다는 특정 인물에 대한 투표가 이뤄졌고, 그에 대한 반감으로 당의 중견 의원이자 제주도의 수재로 소문났던 원희룡이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이다. 만약 원희룡이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번 도지사 선거도 한 치 앞을 가리기 힘든 접전이 되었을거라는 견해가 중론인데, 그 증거로 도의회는 새누리당 17명 / 새정치연합 16명 / 무소속 3명 / 교육의원 5명으로 어느 한 쪽에 쏠리지 않는 균형잡힌 구성을 이루었다. 교육감도 진보 성향의 [[이석문]]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신구범 후보는 원희룡 전 지사의 영입을 받아들여 해당 행위로 징계를 받았고, 결국 최순실 사태 이후 제발로 민주당을 나왔다(...) 애당초 신구범 전 지사는 [[창조한국당]]에도 입당하여 2011년 1년간 '제주창조당'이란 반독립 정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로서 '제주도 3김시대'는 정말로 끝났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돌풍 분위기가 거셌고, 도지사 후보 5명[* [[더불어민주당]] [[문대림]](기호1), [[자유한국당]] [[김방훈]](기호2), [[바른미래당]] [[장성철(정치인)|장성철]](기호3), [[녹색당(대한민국)|녹색당]] [[고은영]](기호6), [[무소속]] [[원희룡]](기호7).]의 난립으로 표 분산효과가 있었는데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원희룡]] 후보가 2위 [[문대림]] 후보에 11.71% 포인트 격차로 승리를 거두며 연임에 성공했다. 상대였던 [[문대림]] 후보가 [[김우남]]과의 당내 경선 갈등을 완전히 풀지 못한 점, 지나칠 정도로 [[문재인]]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다는 점, 선거기간 중에 불거진 각종 의혹제기[* 1) 도의원시절 자신의 지역구였던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 2) 주식회사 '유리의성' 이중급여 및 재산신고 누락 의혹, 3) 법학석사 논문 표절 의혹, 4)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 이력과 인허가 관련 로비스트 의혹, 5) 더불어민주당 도지사후보 경선과정 중 당원명부 유출 의혹, 6) 세계 7대 자연경관 추진시 도민 혈세 170억원 사용 방조 의혹, 7) 제주도의회 환경위원장 당시 도내 골프장으로부터 명예회원 위촉 논란, 8) 우근민 도정 시절 도의회 의장으로서 중국자본 투자유치 활동 등.]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점, [[우근민]] 전 [[제주지사]]와의 관계 해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 등으로 인해 여론조사 초반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원희룡]]의 경우 그야말로 [[문대림]] 후보의 고향인 서귀포시 대정읍과 제주시 외도동을 제외한 제주도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본인의 인물경쟁력을 제대로 입증했다. 한편 도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의석 38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29석을 차지할 정도로 압승을 거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주도가 정당이 그럴 듯 해도 도지사 후보로는 아무 인물이나 뽑는 지역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2021년 8월 1일 원희룡 전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하면서 도정 공백이 발생했다. 때문에 [[20대 대선]]에서 2위로 낙선한 [[이재명]]이 제주도에서 이기면서 처음으로 대선 당선 적중에 실패했다. 또한 이 영향인지 [[8회 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렇게 3번이나 중앙 정치인사가 당선되면서, 6연속 궨당 도지사 시대는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궨당의 힘이 강했던 국회의원 선출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20대 총선]] 이후 [[제주시 을]] 선거구에서 해당 지역과는 큰 관련은 없는 [[오영훈]](더불어민주당, 남원 출신) 후보가 [[부상일]](자유한국당, 구좌읍 출신) 후보를 상대로 승리,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는 [[김한규]] 후보가 또 승리하였다.[* 김한규는 서울 출생이지만, 23대째 제주에서 살아온 제주시 출신이며, 초, 중, 고등학교 12년 모두 제주도에서 보냈다.] 2020년을 기점으로 궨당의 기세도 크게 약화되었는데, 궨당의 영향을 받는 인물들이 죽거나 노년층이 되어버린데 비해 꾸준히 육지에서 온 304050이 결국 제주 인구에서 토박이 못지 않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게 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당의 텃밭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