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왕절개 (문단 편집) == 제왕절개 vs. 자연분만 == 제왕절개는 진통은 적을 수 있지만 후에 오는 후유증이 자연분만보다 심한 편이다. 후산통이 무척 아프고, 1주일간 거의 움직일 수 없으며, 혼자서 일어날 수도 없다. 통상적으로 제왕절개는 자연분만에 비해 6주 정도는 더 회복이 더딘편이다. 수술자국에 무거운 모래주머니 같은 걸로 눌러준다. 첫날은 물을 포함해 금식, 둘째 날부터 미음부터 시작하여 먹는다. 배를 가르는 큰 [[수술]]로, 산모의 피부를 절개하고 그 아래 근육층, 자궁까지 가르는데 내부는 제법 크게 절개를 하기 때문에 겉 피부가 다 아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사람에 따라 1년까지도] 수술자국 피부 그 아래의 부위가 저릿저릿하다. 한동안은 느낌도 없고 근육을 절개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배 근육에 힘이 안 들어 간다.[* 다만 시술시 [[무통분만|무통주사]]를 통해 피할 수 있다.] 자연분만의 경우 진통이 훨씬 심할 수 있지만 순산했다면 다음 날에도 잘 먹고 잘 걷는다. 난산의 경우에도 나흘 정도면 몸을 추스를 정도는 되는 편. 제왕절개는 회복이 느린 산모의 경우, 열흘 이상도 거동이 힘들 수 있다. 같은 날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를 한 산모가 있다면 자연분만한 산모는 3~4일 만에 자기 옷 입고 애 안고 걸어서 퇴원하지만, 제왕절개한 산모는 회복이 덜 되어 남편 손 잡고 걷기 연습 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출산 후 자궁수축에 의한 통증도 제왕절개가 심한 편이며, 아무래도 배와 자궁을 가르고 아기를 꺼내는 것이기 때문에 회복 과정에서 장 유착이 되기 쉽다. 과거 제왕절개 출산력이 있는 산부의 경우 다음 아이를 자연분만 시도할 경우 절개부가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기존에는 대부분 계속 제왕절개로 출산했으나, 의료기술이 발달하며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면 제왕절개 후 자연분만, 일명 '브이백'이 가능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54904&ref=D|출산 둘러싼 '오해'…제왕절개→자연분만 가능]] 다만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은데다가 10명당 1-2명 꼴로 응급 제왕절개를 해야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자연분만의 경우도 회음부 통증 등으로 인한 오랜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특정 분만 방법이 더 힘들다고 단정짓기 어려우며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산모의 몫이다. 또한 자연분만을 한 아기의 지능이 더 높다는 [[http://news.imaeil.com/Health/2006080307502516629|연구결과]]가 있지만 이런 연구결과에 대한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093169/|반박]] [[http://www.skepticalob.com/2017/09/no-new-study-does-not-show-that-cesarean-born-children-have-cognitive-delay.html|연구]] 또한 존재하는 만큼 자연분만을 한 아기의 지능과 제왕절개를 한 아기의 지능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자연분만을 하지 않으면 [[모성애]]가 없을 거라는 속설을 믿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모성애 면에선 난산을 피하는 제왕절개 쪽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산모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난산은 [[산후 우울증]]을 발생시켜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역사서에도 기록된 사례로, 춘추시대 정나라 군주인 [[정장공|장공]]은 난산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았고 동생인 공숙 단이 편애를 받았다. 14세에 즉위하고서도 무려 22년 동안이나 자기 자리를 노리는 동생과 그 동생을 밀어주는 어머니를 경계하다가[* 그나마도 아버지인 정무공이 자신을 적극 밀어주어 세자가 되고 자리도 물려받았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심지어 후계자도 못 될 뻔했다. 자기를 미워하는 어머니가 공숙 단을 밀어주었기 때문] 결국 단이 반란을 일으키자 일거에 쳐서 동생과 어머니를 한방에 쫓아내버렸다.[* 그래도 공숙 단과는 달리 어머니인 무강은 처음에는 황천에 가기 전까지는 절대 보지 않겠다며 노발대발했지만 어쨌든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인지 곧 그 발언을 후회하여, 한 신하의 조언으로 꼼수를 써서 다시 만난다.] 탄생 때의 고통으로 인해 산모와 아들이 무려 35년 동안이나 원수같이 지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