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노전쟁 (문단 편집) === 돤치루이의 중재와 상하이의 함락 === 한편 돤치루이는 전쟁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여 육군총장 우광신을 파견, [[5.30 사건]]을 처리하게 하는 한편 루융샹이 강소독판, 쑨촨팡이 절강독판이 되는 합의안을 내놓아 절호연군 2로 총사령관 쑨촨팡으로 하여금 치셰위안을 돕지 않을 것을 주문하였다. 임시정부가 자신의 기반을 건드릴 의사가 없음을 타진하자 쑨촨팡은 치셰위안을 돕지 않고 관망할 따름이었다. 이에 장쭝창과 쑨촨팡은 상하이에서 강화조약에 서명했다. 쑨촨팡이 관망하는 사이, 장쭝창은 8사단을 동원하여 상하이를 점령했다. 장쭝창은 부하 필서성을 해군 사령관에, 왕기에게 상하이 세무국장을 맡겨 상하이의 행정을 장악하였다. 치셰위안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루융샹은 잔여 부대를 재편하려고 했지만 인력도 장비도 군비도 턱없이 부족하여 병력을 재건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루융샹은 봉군에 얹혀사는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강소독판 자리를 봉천군벌의 [[양위팅]]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안휘독판 왕읍당 역시 자신의 자리를 강등선에게 내주었다. 이후 장쭝창은 산동은 산동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장쭤린의 명분에 따라 산동독판으로 이동했고 봉군은 장강유역을 장악하였으나 봉군의 확장에 경계를 품은 [[쑨촨팡]]이 봉군에 대항하여 [[손봉전쟁]]을 일으키면서 곧 축출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