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탄 (문단 편집) === [[조모]] 시대 === 255년 관구검과 양주자사 [[문흠]]이 [[관구검-문흠의 난|손잡고 사마사에게 반기를 들자]] 제갈탄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예주]]의 관리와 백성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제갈탄은 사자를 베고 천하에 공포하여 사람들이 관구검과 문흠의 흉악한 음모를 알도록 했다. 대장군 사마사는 동쪽 정벌에 오르면서 제갈탄으로 하여금 예주의 군대를 지휘하여 안풍진(安風津)을 건너 그 제압에 앞장서 근거지였던 수춘을 빼앗았다. 수춘에 있던 10만여 명의 백성은 관구검과 문흠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모두 성문을 부수고 나와 산과 연못으로 흩어져 떠돌았으며, 간혹 오나라로 흩어 도주해 들어가기도 했다. 제갈탄은 회남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그 공으로 진동대장군, 의동삼사가 되어 다시 양주도독을 맡았다. 256년 겨울, 이 혼란을 틈타 오의 [[손준]]이 쳐들어 오는 것도 격퇴해 좌장군 [[유찬#s-1]]을 베어 그 머리를 수도로 보내고 그의 관인과 부절을 손에 넣었다. 승진하여 고평후(高平侯)로 봉해졌으며, 식읍 3천5백 호를 받았고,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으로 전임되었다. 256년 겨울, 오(吳)나라 적이 서알(徐堨)로 향하려고 했다. 조정에서는 제갈탄이 지휘하는 병사와 말로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고 계산하였는데, 제갈탄은 또 10만 명의 병사를 요청하여 [[수춘]]을 지키고, 또 [[회수]]에 임하여 성을 쌓아서 침략에 대비하기를 원했다. 마음속으로는 회남을 지키려고 했다. 조정에서는 제갈탄이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살펴 알고 있었지만 선제 이래의 오래된 신하라는 점을 고려하여 조정으로 들어오게 하여 처리하려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