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탄 (문단 편집) === [[조예]] 시대 === 조예는 이처럼 명성 높은 이들을 매우 싫어하여 "명성이란 병풍에 그린 떡과 같으니 실속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고, 중서랑 [[노육]]을 시켜 관리의 성적을 평가해 임용하는 제도를 만들게 했다. 이런 연고로 면직당했다. 세어에 따르면 당시의 준걸인 산기상시 하후현, 상서 제갈탄, [[등양]]이 무리를 지어, 서로를 품평하며 글을 쓰곤 하였는데, 이에 하후현의 부류 네명을 [[사총]](四聰)이라 하였으며, 제갈탄 등 여덟명 모두를 팔달(八達)이라 하였다. 중서감 [[유방(삼국지)|유방]]의 아들 [[유희]], [[손자(삼국지)|손자]]의 아들 [[손밀]], 이부상서 [[위진#s-1]]의 아들 [[위열]]의 삼인 모두 하후현, 제갈탄 등에게 견줄 바가 아니였지만, 아버지의 세력를 받아들여, 삼예(三豫)라 하였다. 이들은 총 15인(十五)이었다. 조예는 이들이 겉만 화려할 뿐(浮華)이라 여겼으며 모두 관직으로부터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