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근 (문단 편집) === 강릉 전투 === [[이릉대전]] 이후 222년 좌장군과 공안독 그리고 가절에 임명되었으며, [[위(삼국시대)|위]]가 [[조비의 남정|공격해 오자]], [[반장(삼국지)|반장]]과 함께 남군을 구원했다. 이때 제갈근과 양찬은 [[하후상]]이 이끄는 위군을 보고 속수무책이었으나 부하인 반장이 싸우지 말고 기다릴 것을 진언하자, 이를 일임하여 전력을 온존했다. 강릉에서 공격받는 [[주연(삼국지)|주연]]이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손권이 그를 원망할 정도였으나, 결국 상황이 불리해진 위군이 먼저 퇴각했다. ||조진과 하후상 등이 강릉에서 주연을 포위하고, 주중(州中)을 나누어 점거하니, 제갈근이 대병을 이끌고 구원했다. 제갈근이 성품이 넒고 급하지 않아, 도리를 미루어 보고 계획을 맡기니, 끝내 기복 화복(禍福)이 생길한만한 술책은 내지 않고, 병사들이 오랫동안 해이해지지 않으니, 손권이 이것을 존경하였다. 봄물이 날 때쯤에 반장 등이 상류 물가에 성을 쌓고 제갈근은 부교를 띄워 진공하니, 조진 등은 퇴각해 패주하였다. 비록 큰 공훈은 없었지만, 또한 군대와 경내를 보전한 것을 공으로 삼았다. - 오록 || ||위나라 장수 하후상 등이 남군을 포위하고, 선봉 부대 3만 명을 나누어 부교를 만들고 백리주를 건너왔다. 제갈근과 양찬이 함께 병사를 모아 구원하러 달려갔지만, 그 사태에 대처할 바를 몰랐고, 위나라 병사들은 날마다 끊임없이 건너고 있었다. 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나라의 기세는 방금 흥성하기 시작했고, 강물은 또 얕으므로 그들과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위로부터 상류로 50리 되는 곳까지 가서 갈대를 수백만 개 베어 커다란 떼를 만들어 물의 흐름을 따라 불을 놓아 부교를 전소시키려 했다. 떼 만드는 작업이 막 끝나 강물이 가득 찬 것을 보고 띄우려고 할 때에 하후상이 이것을 알고 병사를 인솔하여 물러났다. 반장은 말에 올라 육구까지 내려가서 막았다. - 반장전 || 강릉 전투에 대한 기록은 대개 제갈근을 그 주체로 하고 있으나 제갈근전 주석의 오록과 반장전을 살펴보면 이 전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것은 반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제갈근은 위군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고, 전면전을 피해 전력을 보존하고 계책으로 하후상을 물러나게 한 것은 모두 반장에게서 나온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