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각 (문단 편집) === 비교론 === 제갈량과 진지하게 비교해 보면,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 같은 제갈씨 가문의 인재. >2. 군주를 대신해 ([[제갈량|실질적으로]] 또는 공식적으로) 전권을 갖고 통치함. >3. 각각 단양 평정과 남만정벌을 벌이고 성공함. >4. [[제갈량의 북벌|북벌]]을 [[합비 전투(253년)|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이 때문에 제갈량을 비난하기 위해서 제갈각과 함께 북벌을 하다가 망했다는 투로 둘을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위의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 해도 무방하다.''' 제갈각은 결국 지도자로서 대실패한 반면 제갈량은 국가를 다스리는 재상으로 생전은 물론 [[흥세 전투]]를 비롯해 사후 촉한이 30년이나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제갈량은 총 5번의 북벌을 추진했음에도 [[마속]]의 뻘짓인 가정 전투 외에는 패배했다고 볼 만한 전투가 없었으며, 제갈각의 20만 대군이 제대로 후퇴하지도 못한 채로 말 그대로 붕괴한 것과 달리 제갈량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매번 후퇴에 성공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심지어 퇴각하는 과정에서 왕쌍, 장합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5차 북벌에서 제갈량 사후 퇴각 명령에 반기를 들고 [[위연]]이 내분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이 역시 시기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면서 북벌군이 위군의 추격에 전멸하는 일만은 방지했다. 특히 제갈량과 제갈각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부분은 각자 '''[[북벌]] 이후 행한 대처법'''이다. 1차 북벌의 실패가 제갈각의 합비신성 전투의 실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미한 데다가 [[마속]]을 채택한 인선 외에는 실수라 할 만한 부분이 없었음에도[* 다만 그 한번의 실수가 사실상 촉한의 운명을 끝낸 수준이기는 했다.] 제갈량은 몸소 관직을 깎고 본인의 실패를 난타하는 글을 올려서 가장 큰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점을 확실시하고 총애하던 [[마속]]을 베어 [[읍참마속|군의 규율을 바로잡았다.]] 지도자로서 한 집단에 대한 책임을 몸소 보인 셈인데 제갈각은 그러한 인덕이 부족해서 실패에도 불구하고 [[책임전가|남 탓으로 몰고]] 오히려 또 다른 외정을 즉시 준비하는 등 모두의 공분을 샀다. 지략가로서 제갈각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지도자로서의 제갈각은 [[영 좋지 않은]] 셈이었다. 제갈량의 북벌이 촉을 망하게 만든 계기라는 해석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제갈량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득이 되었으면 모를까 해가 된 적은 없다. 하다 못해 [[관중]], 농서를 손에 넣는다는 일차적인 목표가 실패했고 촉한의 국력에 해가 되었다고 쳐도, 제갈량은 북벌에서 소모한 이상의 국력을 축적한 명재상이었다. 그에 비해서, 제갈각은 패전 한 번으로 나라가 엉망진창(...). 즉 내실에서부터 숙부 제갈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제2차 복벽군주 [[소열제]]와 함께 제2차 복벽공신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무향후]]와는 다르게,[* 다만 [[이릉대전]]을 보면 알겠지만 이 대전 얼마 전에 [[법정]]과 [[유파]] 등 촉군의 수많은 인재들이 줄줄이 죽어 인재가 부족하고 유비가 사망하고나서 뒤를 이은 [[유선]]은 아직 어렸다. 제갈량이라고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제갈각은 [[이궁지쟁]]으로 묵사발나고 분단된 조정을 본인의 업적 부족으로 인한 약한 권위와 함께 물려받았다. 게다가 오나라는 처음으로 황위계승을 겪고 있었으며 사병을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은 주종개념을 손권에서부터 손량으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게다가 토착호족들의 세력이 강한 오나라 특성상 국론통합이 어려웠다. 즉, 제갈각은 오나라의 활로를 뚫겠다는 의미에서, 제갈량의 북벌을 본받으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제갈각의 '논하는 글'에서 처음 언급하는 천하통일의 명분, 즉 한 하늘에 해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제갈각 나름대로 북벌의 명분을 세우고 일종의 국가목표를 천하통일로 두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갈각은 제갈량과 달리 실패시의 피해를 최소화하지도 못하고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했으며 본인의 실패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의 공분을 살 짓을 골라서 했다. 여러번 언급한 부분이지만 제갈각은 지도자로서의 그릇없이, 오나라의 미래의 갈림길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상황에서 여러번 과오를 저지르며 사실상 자신이 주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런 의미에서 제갈각과 제갈량 간의 차이는 [[넘사벽]]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제갈각 자신은 숙부만큼 잘난 인물이 되고 싶었고 어느 정도 능력도 있었지만 정작 '''행보와 업적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