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갈 (문단 편집) == 역사 ==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는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미추 이사금]] 치세의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후손들이 신라에서 벼슬을 하거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등의 변천사를 겪다가 21대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 때 공식적으로 귀화하여 우리나라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정사 삼국지 오서 제갈근전에 단 배송지의 주석에 따르면 제갈근의 선조 갈씨는 낭야 현 사람이지만 집을 양도로 옮겼고, 양도에는 전부터 갈씨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이 여러 현에서 옮겨 온 갈씨를 제갈이라고 불러서 갈씨에서 제갈씨가 되었다고 한다.[* 세설신어보에서는 갈씨들이 낭야군의 제현(지금의 산동성 청도)에 모여살았던 적이 있는데, 제현에 거주하는 갈씨라는 의미에서 제갈이라고 불러서 성이 바뀌었다고 적혀있다.] 그러니까 원래는 갈씨였는데 제갈씨로 바뀐 것이다. 제갈충은 제갈량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다. 제갈충은 제갈경의 아들이며 또한 제갈경은 [[제갈첨]]의 차남이라고 한다.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은 유선의 딸과 결혼하여 부마가 되었으므로, 이와 같은 유래에 한치의 틀림도 없다면 '''한국 제갈씨는 제갈량은 물론이고 [[유비]]의 후손이기도 한 셈'''. 물론 여기에도 이설은 있어, 제갈충은 제갈첨의 차남인 제갈경의 아들이 아니라 제갈첨과 함께 촉한 멸망시에 면죽관에서 전사한 장남 제갈상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아예 단지 제갈규의 5대손이라고만 전하기도 하여, 자세한 내막은 정확히 알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결국 제갈규의 5세손일 뿐이라는 단서만을 따르자면 한국의 제갈씨는 제갈량의 동생인 [[제갈균]]의 4세손일 수도 있고 [[제갈근]]의 아들이자 제갈량의 양자였던 [[제갈교]]의 손자 제갈현이 [[제갈각]]의 삼족이 멸족된 뒤 다시 제갈근의 후사를 잇게 되었으므로 오나라 제갈씨의 적자인 제갈현을 제외한 그의 동렬 형제의 후손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내용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한국 제갈씨 유래의 공식적인 내용은 아무튼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이 신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이래 그 후손이 중국으로 한번 귀환하였다가 제갈규의 20대손에 해당하는 제갈공순이 9세기 초 다시 신라로 귀화함으로써 한국 제갈씨의 중시조로 일컬어지게 되었다는 것.[* 제갈규의 4대손 제갈경은 제갈첨과 제갈상의 사후, 그리고 촉한이 멸망한 이후 [[서진|진晉나라]]에서 벼슬을 하기는 하였지만 망국의 설움 때문이었는지 결국 그 아들 제갈충이 신라로 망명하였고 진의 멸망 이후 중국으로 돌아갔던 제갈충의 후손이 환관들이 황제들을 줄줄이 살해하는 당나라 말 혼란기에 다시 신라로 건너온 이래 한반도에 완전히 정착하였다고 한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모든 제갈씨가 망명한 것은 아니라서 여전히 중국에는 제갈량, 제갈근의 후손들이 건재하며 [[진화시|팔괘촌]]을 비롯한 제갈씨의 집성촌들도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제갈씨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론 같은 가문이지만, 중국의 제갈씨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의 후손의 비율이 제갈규의 후손보다 더 높은 편이라고 한다. 제갈정의 아들 제갈회는 총명하다고 알려져서 동진에서 원제 사마예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등용되었다고 하니 나름 잘 살긴 했던 것 같다.[* 또한, 제갈회에게는 제갈문호라는 딸이 있었는데 유량의 아들 유회와 결혼했다고 하는 걸 보면 다른 명가들과 사돈관계를 맺기도 한 것 같다. 유량이 황가의 외척으로 [[탐관오리|권력을 남용하는 인간]]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시아버지가 인간성이 바닥이라서 고생은 좀 했겠지만.] 한국의 제갈씨는 오직 귀화한 제갈규의 5대손 일족 뿐이지만 중국에는 제갈규의 후손 중에서도 제갈량, 제갈근, 제갈균 등 오남매 모두를 비롯해서 그들과 비교적 멀지 않은 촌수일 제갈탄, [[제갈서]], [[제갈직]] 등 [[낭야]]군 출신의 동향 친족들은 물론이고 당대의 모든 제갈씨들이 번성하고 그 후손을 남겨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한국의 제갈씨가 제갈량의 후손임이 틀림없다는 단서 하에서 오히려 한국에 제갈량의 고유한 피와 유전자가 더욱 독보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역설적인 그림이 되는 셈이다. 또 고려 현종(顯宗)때 제갈홍(泓)과 제갈형(瀅) 두 형제가 군(君)에 해당하는 고위의 벼슬을 각각 받자, 자신만의 성씨를 가질만한 신분이 되었으므로 제씨와 갈씨로 분성하여 각각의 시조가 되는 일도 있었는데, 대한제국 광무 기해년(1899)에 중추원과 장례원에 상청하여 복성을 허락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일부 제씨와 갈씨가 다시 제갈씨로 복성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에는 현재 제갈씨, 제씨, 갈씨가 모두 존재한다. [[제(성씨)|제씨]]와 [[갈(성씨)|갈씨]]는 [[제갈]]씨에서 갈라진 역사를 인정받아 개인이 원하면 법원 판결을 통해 [[제갈]]씨로 복구할 수 있다. 실제 사례로 갈정웅 대림I&S 부회장이 2002년 제갈씨로 복원한 사례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