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군단 (문단 편집) == 연혁 및 특징 == 3개의 [[사단(군대)|사단]]과 7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기린대'''[* 기린대는 사령부가 위치한 인제군 기린면에서 따온 것이다. 기린대의 '대'는 무리를 나타내는 隊를 사용하고, 교육기관인 화랑대, 상무대 등은 돈대 대(臺)를 사용한다.] 또는 '''산악부대'''[* 부대의 명칭에는 [[고유명칭]], [[통상명칭]], [[상징명칭]]이 존재한다. 고유명칭과 통상명칭을 함께 사용한 것을 금하며 추가로 상징명칭이 아닌 애칭, 별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방부 훈령인 국방조직 및 정원 관리 훈령에 어긋난다.]로 불린다. 한국 전쟁 중 1950년 10월 16일 서울시 중구 남산동에서 초대 이형근 소장이 군단장에 임명되고 9사단, 11사단을 편성하여 창설되었다. 그러나 창설 7개월 만인 1951년 5월 16일 창촌으로 철수하던 제9보병사단이 중공군의 2개 군단에 의해 오마치 고개가 점령된 것을 알게 되었다. 5월 17일, 반격을 포기하고 [[현리전투|현리]]에 집결하여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려 했으나, 북한군 제5군단, 12군단, 27군단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퇴각 작전은 실패하였다. 작전이 실패하면서 군단은 전투의지와 통제를 잃었으며 후퇴하는 도중, 군단장 유재흥 소장이 지휘권한을 버리고 항공기로 이탈하였고, 5월 22일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까지 후퇴하였다. 1951년 5월 26일 미국 제8군 지휘관 [[제임스 밴 플리트]] 대장이 책임을 물어 유재흥의 직위를 박탈하고 3군단을 해체시켰다. 군단 예하의 제2, 5, 9, 11사단은 각각 [[미8군]] 예하 배속되었다. 1953년 5월 1일, 강문봉 소장을 군단으로 임명하고 제20, 22사단을 예속받아 강원도 인제군 관대리에서 재창설되었다. 같은 해 12월 15일, 제1야전군 예하의 군단이 되었다. 이후 주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12사단을 궤멸시킨 [[매봉·한석산 전투]]를 비롯해 백석산, [[펀치볼 전투]] 등에서 영토를 사수, 확보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1968년 울진 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소탕작전, 1990년 [[제4땅굴]] 발견,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소탕작전 등을 완수했다. 1972년 7월 27일 [[소양강댐]]이 건설되어 본래 주둔지인 관대리가 물에 잠기자 부대를 기린면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1983년에 제22보병사단과 제68훈련단을 의정부로 이전한 [[제7기동군단]]에서 편입했으나, 1987년에 영동지역의 지역방위 기능을 다시 [[제8군단]]으로 분리하면서 다시 빠져나갔다. 전군에서 근무 환경이 척박하기로 손에 꼽히는 군단 중 하나이다. [[수도군단]]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제1군단]]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제2군단]]은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제5군단]]은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제7기동군단]]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인데 반해 제3군단은 주둔지가 군단급 중에서는 유일하게 '''군'''급이자 '''행정구역이 DMZ에 마주하는 유일한 지자체'''다. 스스로를 산악군단이라 자부하는 군단인 만큼 유달리 산을 홍보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에 걸맞게 소속 사단들은 한결같이 근무 환경이 최악을 달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3군단은 155마일(248km) 휴전선 중 가장 넓은 일반전초(GOP)를 담당하고[* 제21보병사단], 평균고도는 물론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 제12보병사단]'''해있기 때문이다. [[제12보병사단]]과 [[제21보병사단]]의 경우, [[제7보병사단]]과 더불어 가장 험준하기로 유명한 GOP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부대의 주둔지는 강원도 [[인제군]], [[양구군]], [[홍천군]][* [[제36보병사단]] 책임 지역이지만 [[20기갑여단]] 및 소수의 부대가 주둔 중이다.] 일대. 지금은 해체되어 없어졌고 비록 GOP 사단은 아닌 예비 사단이지만 살인적인 행군량과 훈련량으로 악명이 높았던 [[제2보병사단|(구)제2보병사단]] 또한 3군단 예하 사단이었다. 교통도 열악해서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여기로 오려면 홍천을 지나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까지 올라가서 [[31번 국도]]로 현리까지 역행하는 경로가 가장 안전했다. 홍천에서 현리로 바로 가는 [[451번 지방도]]는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돌아가기 때문에 구배와 경사가 험악하기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금강고속]]에서 운행하는 홍천-현리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쳐가는데, 길이 오죽 험하면 1월 중순에는 시외버스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 동서울까지 연장하는 회차에는 현리나 동서울에서 출발한 차량이 홍천에 도착하면 운전자를 교체한다. 구간만 운행하시는 분이 6명 정도 있다고 한다. 그 유명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다 나으리'''에 해당되는 동네이지만, 지금은 양구는 춘천까지 도로로 40분, 현리는 [[서울양양고속도로]]로 2시간 이내 정도면 간다. 단 여전히 추운 동네인 건 어쩔 수 없는 듯. 제12보병사단, 제21보병사단 GP/GOP는 고지대라 7월 아침 기상시에 입김을 불면 입김이 서릴 정도이다. 산간 지역으로 추정되는 모 예하 부대에서는 병사들이 하절기에 추워서 전투복 소매를 내리니 [[행정보급관]]이 '하절기에는 팔을 걷어 올리는 것이 원칙'이라며 전투복은 하절기에 맞춰 팔을 걷어 입되, 추우면 그 위에 [[야전상의]]를 덧입으라고한 적도 있다. 육군의 복제규정에 의거, 야전상의는 사계절 언제나 착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훈련소는 낮은 곳에 있으니 그나마 괜찮은데, 7월에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GOP]]로 자대 배치를 받으면 [[방한복 상의 내피|깔깔이]]를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을 볼 수도 있다. [[경례구호]]로는 '충성'을 사용하며 1997년도에 '단결'에서 '충성'으로 변경되었다. 2023년 5월 1일에 [[제8군단]]이 해체되어 제8군단에 있던 예하부대를 이관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