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보병사단 (문단 편집) === [[제31보병여단|제31보병연대]] 백호 === [[파일:31보병여단 마크.jpg|width=200]] ※ 2019년 12월 [[제21보병사단]]으로 소속변경 * 연대본부 * 1대대 진격(신병교육대) * 2대대 승공 * 3대대 통일 부대 예명은 백호부대. 1대대는 신병교육을 담당했었으며[* 현재도 신병교육대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제63보병연대가 없어지면서 21사단 신병교육대대(제63보병연대 1대대)가 해체되고 본래 (구)제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였던 제31보병여단 1대대가 제2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로 바뀐 것.], 2대대와 3대대, 의무중대, 전투지원중대, 수색중대는 하나의 울타리안에 있다. 1대대와 2대대는 신막사이며 3대대는 현재 구막사이나, 수색대대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수색대대 막사가 개수되는 바람에 시궁창. 3대대도 신막사로 개수를 검토중인데 차일피일 미루고있는 중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3대대가 단일건물 즉 아파트 식의 신막사였고 1대대와 2대대는 완전 예전 구형 막사였다. 나무 관물대에 침상마루. 여름이 되면 3대대는 물 부족에 시달린다. 또한 물탱크가 뒷산 중턱쯤에 있기 때문에 보일러병이 여름만되면 땀을 뻘뻘흘리며 물탱크에 있는 물을 확인하러 가러 올라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글을 읽는 31연대 2대대, 수색, 의무중대 장병이 있다면 여름에 물을 아껴쓰자. 신병교육대대가 실거리 사격을 할 일이 있으면 나머지 대대 장병들은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는 1대대 실거리 사격장까지 멀쩡한 인도를 두고 2대대 뒷산을 넘어서 가야한다. ~~배차신청을 해도 안내준다~~ 부대가 한 울타리를 치고 사는데, 연대는 부대가 커지면서 주변 땅을 잡아먹은지라 [[위요지|군 부대 안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병소 출입 및 보안 문제로 항상 주민과 위병소 근무자들간의 마찰이 잦다. 근무체계가 바뀌어 담당하던 전문팀이 빠지고 다른 팀이 해당 근무를 맡으면서 아예 관리가 안되던 시절도 있었다. 부대 입구에서 올라가는 중간에 교회가 있으며 백호연대 전 인원과 길 건너의 수색대대,화학지원대 장병들을 수용한다. 이는 성당과 법당도 마찬가지로, 31연대와 길 건너 수색대대, 화학지원대 장병들을 수용한다. 좀 기괴한게, 교회가 언덕 맨 위에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성당이 자리한다. 성당에서 교회를 올려다보면 짓누르듯 자리잡고 있는 묘한 배치. 게다가 성당 옆에는 무명봉분이 하나 떡 자리잡고 있다(…) 참고로 예하 부대인 수색중대는 2 대대 → 본부 → (수색) → 3대대로 독립적으로 따로 막사를 운용하던 중대 였으나 (2006년까지) 이후 신막사 건립등의 이유로 타 부대와 같은 막사를 쓰게 되었다. 훈련이 미치도록 많은 연대. 특히 2대대의 경우 2000년대 초 당시 위관급 장교로는 건국 이래 최초로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은 [[김승겸]] 현 [[합동참모의장]]이 중령 시절 대대장으로 부임하여 사단 전체에서 악명높은 빡셈을 자랑했다. 일주일 내내 교육훈련에 수요일마다 분대단위 사격(사로내에서 빵야빵야가 아니다. 사로위에 도열하여 총 내리고 있다가 분대장 구령에 맞추어 3점사로 북한군 타겟을 개발살내는 그런 사격이다. K3 사수도 사로위에 서서 연사로 갈겼다) 훈련 마치고 주둔지 복귀하면 다음 훈련 준비하는 그런 대대였다. 후에 [[김승겸]] 중령은 사단 작전참모를 하다가 대령 진급 후 1사단 12연대장으로 부임하였고[* 전임 연대장이 김운용 대장(前 [[지상작전사령관]])], 이후 장성 진급 후 [[제28보병사단]]장으로 부임하셨다고 한다. 사고 많은 부대에 해결사로 가신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해결사 역할을 잘 수행했는지 중장진급과 동시에 [[제3군단]]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9년 군단장 임기를 마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을 맡은 뒤 2020년 대장으로 진급,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부임했고 1년 반 후에 정권이 교체되자 합참의장으로 영전했다. 31연대는 사단 예비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소문이 나돌만한 것이, 17연대는 인제 원통 지역, 32연대는 양구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고 31연대는 가장 후미에 위치해 있다. 실제로 1996년 대침투 작전시 17연대와 32연대는 일부 병력만 차출된 반면에 31연대는 신병교육대대와 주둔지 경계 병력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 연대가 출동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단 주력이라 여겨지던 17연대가 있음에도 주야장천 훈련에 불려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홍천에 위치한 군단 탄약고 경비중대로도 심심하면 불려다녔다. 게다가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작전 당시 2개월 넘게 X성산 - X대산 - X로봉 등으로 돌아다녔다. [[제27보병사단|(구)제27보병사단]](이기자부대)와 함께 그 가운데서도 차단선 최전위에 위치했다고 알려진다. 실제로 그 당시 전과도 있었다. 다만 전공을 올린 병사가 상근 예비역이어서 다른 현역들을 멘붕 시켰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7중대의 송관종 일병이 작전 중 전사하였으며 사후에 상병으로 진급되었고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당시 전공을 올리면 남은 군 생활은 거의 면제 수준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퍼져있었다. 최상급 부대로부터 중대장에 이르기까지 휴가증을 받아 한 동안 쉰 다음, 간첩을 사살했으므로 민간인보다는 못하지만 나오는 포상금도 챙기고 남은 기간은 이리 저리 강연하러 다니면서 군생활할 수 있다는 소문. 그런데 공로를 세운 병사가 상근 예비역에 남은 현역 생활도 채 2개월이 안 남은 상황. 다른 병사들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서 떠도는 2011년 3월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 |외박나온 군인들을 민간 고등학생이 폭행한 사건]]에서 피해 군인들이 속한 곳이 31연대였다. 2019년 말 31연대는 [[제21보병사단]]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제21사단 예비연대였던 63연대는 31연대에게 신병교육대를 포함한 작전 계획지 및 인원들을 이관하고 해체 수순을 밟았다. 2000년대 초반 전투지원중대 막사 및 화장실 건물은 1960년대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을만큼 초구식이었으며 특히 화장실이 매우 낙후돼 겨울에 대소변이 얼면서 차곡차곡 쌓여 일명 '똥탑'이 변기 입구까지 생기기 때문에 막대기 등을 이용하여 무너뜨리고 이용해야 했다. 봄이 되어 대소변이 녹으면 신기하게도 고체와 액체가 완전히 분리된 형태가 되어 평소같았으면 진흙탕같아야 할 똥통이 윗부분엔 액체만 존재해 이 시기에는 대변을 보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엉덩이가 엉망진창이 되어 샤워를 해야만 했고 그런 이유로 다른 중대 화장실을 몰래 사용하는 일이 잦았다. 2000년대 초반 육사 수석 졸업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던 이○○ 연대장이 연대 연병장을 둘러싸고 있는 화단 정비에 집착이 매우 심해 전투지원중대는 봄부터 가을까지 늘 제초작업에 시달렸다. 어느 날은 제초작업 중 연대장이 지나가며 행정보급관 등에게 맨손으로 뽑으면 뿌리가 남아 도로 아미타불이니 모든 작업병력에게 호미를 지급하고 잡초 뿌리까지 제거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호미 부족으로 수 십명의 병력 중 약 절반 가량의 병력만 호미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맨손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이후 다시 연대장이 지나가며 호미 지급 여부를 확인했고 대노하며 모든 병사들을 막사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이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병사들은 완전군장을 한 채로 제초작업을 하고 있던 간부들을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군단 선봉연대로 연대 전 병력이 양구에서 인제로 헬기를 타고 넘어가는 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 때 헬기는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주말에 간부 축구시합이 예정돼있던 어느 날 폭설이 쏟아져 경기를 못할 지경이었다. 어떤 간부의 아이디어인지 공병대 제설차를 불러 제설을 시도했다. 큰 덩어리들은 순식간에 밀어냈으나 제설차가 미처 건드리지 못하는 바닥에 깔린 눈들이 제설차 궤도에 눌려 얼음처럼 변해 연병장이 빙판길이 돼버렸다. 기계로도 인력으로도 제설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한 간부가 나서 병사들 앞에서 삽으로 얼음덩어리를 찍어내는 이해할 수 없는 시범을 보였고 이후 전 병력이 이를 악물고 삽질한 끝에 간부 축구시합은 예정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 때 한 삽에 찍혀 나가는 얼음의 양은 손바닥 3분의 1 수준이었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제31보병여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