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공화국(드라마) (문단 편집) == 기타 == * 본 드라마의 탄생은 당시 MBC 사장이던 [[이진희(1932)|이진희]]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서울신문]] 주필 시절 [[전두환]]에 대한 [[땡전뉴스|찬양을 담은 여러 기사를 쓰며]] 전두환의 눈에 들면서 1980년 MBC의 사장으로 영전하게 되었는데, 비록 [[낙하산 인사]]이긴 했어도 이진희 자신은 학창시절 영화감독이 꿈일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방송 등 영상매체에 대한 감각도 대단하여 MBC 내 젊은 PD들은 이진희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이진희는 1981년 봄철 프로그램 개편을 앞두고 TV국 측에 '''드라마와 쇼에 시청자들 이목을 끌 수 있는 킬러 콘텐츠를 하나씩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렇게 신설된 프로그램이 본 드라마와 대형 쇼 프로인 [[쇼2000]][*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전신.]이었다. * [[시놉시스]] 단계에서의 드라마 가제는 '''TV 정계야화''' 였는데 그 전해인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동아방송]]의 인기 라디오 정치드라마 였던 '''정계야화'''의 아류작이라는 오해를 우려한 고석만 PD는 김기팔 작가와 의논 끝에 제1공화국 이란 제목을 내놓았고, 그대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 방영 기간 중에 하필이면 [[세계대학경기대회|부쿠레슈티 유니버시아드]]와 [[자카르타]] 국제축구대회, [[MBC]] 창사 20주년 기념 특집 방송 등 여러 행사가 겹친 탓에 총 6번이나 휴방됐다. * 당대 드라마 제작환경 특성상 자체 제작한 BGM 대신 미국 드라마나 영화음악 등을 임의로 차용했다.([[https://blog.naver.com/galaxy_c6250/222265888674|#1]], [[https://blog.naver.com/galaxy_c6250/222266163315|#2]], [[https://blog.naver.com/galaxy_c6250/2222677490480|#3]]) * 1982년 2월 20일(제31호) 기사에 따르면 고석만 PD와 김기팔 작가는 제작 진행상 편견 등이 내포될까봐 당시 생존한 실존인물이나 극중 등장인물들의 유족, 측근 등을 만나지 않는 대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실제 인물들의 측근을 만나 그들이 모신 인물들의 풍모와 일화를 듣고 연기에 참고토록 했다고 한다.[* 해당 잡지 p33 참고.] 담당 분장사였던 박수명(1938~2022)[*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나 용산고등학교와 국학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58년 국립극장 연극인양성소에서 연출을 배우다가 분장으로 방향을 틀어 주로 국립극단에서 분장사로 일했다. 1964년 KBS에 분장사로 입사한 후 드라마에도 손을 넓혀 1969년 MBC-TV 개국 후 이적하여 1천여 편의 드라마에서 분장사로서 궂은 일을 다하며 한 몫을 해왔다. 1992년 MBC 미술센터(현 MBC 아트) 상무로 임명되어 3년을 지내고 1996년부터 2년 간 MBC아카데미 분장과정 전임교수를 맡은 걸 끝으로 퇴직한 후, '바림분장연구소'를 세워 한동안 운영해왔다. 드라마 분장 외적으로 전두환 및 노태우 전 대통령,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들의 메이크업도 담당했다.]이 동 잡지 1981년 7월 18일자(창간호) 인터뷰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실제 인물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난제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분장 전부터 실존 인물들의 사진과 MBC 전속 탤런트들의 사진을 대조해가며 골라냈고, 이승만 역을 맡았던 최불암의 경우 실제 이승만의 노인이면서도 고고한 인상과는 다른 텁텁하고 서민적인 인상이라 막상 난색을 표했다가, 분장 시엔 최불암의 머리를 최대한 짧게 자르고 흰 물감으로 백발을 만들었으며, 머리를 넓게 보이려고 머리칼을 약간 부풀게 붙인 후 눈과 눈썹을 작게 표현했다.[* 초기에는 1시간 20분이나 걸려 고생했음에도 마음에 안 든다는 투였지만, 최불암 본인이 발성 및 내면 연기를 연구한 덕에 이승만과 닮게 되었다고 느꼈다고 한다.] 장택상 역의 이정길은 안경과 콧수염을 강조한 분장, 장택상을 연상할 수 있는 소도구 응용법이라 쉬웠고, 김구 역의 이영후는 골격이 젊은 시절의 김구와 닮은 데다 이기붕 역의 박규채는 눈썹만 아래로 처지게 한 것 빼곤 거의 터치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쉬웠으나, 조병옥 역의 김무생은 이마가 넓은 호랑이 상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인상이라 최대한 고증에 맞춰 분장을 하기에 너무 어려워서 능력껏 분장한 후, 나머지는 그 배우의 연기에 맡기게 됐다고 한다. 그 외에 김두한 역의 강인덕은 뺨 위에 얇은 섬유질을 입혀 곰보자국을 내서 거세게 만들었고, 성격이 억센 사람들의 머리칼도 억세서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서 그 광택으로 효과를 내게 했다. 한 미국인 배우가 맡은 이오시프 스탈린 분장의 경우, 그 배역을 맡은 사람의 머리색이 노랑색이라서 실제 스탈린의 검은 머리를 재현코자 사극용 가발을 분해해서 특수 접착제를 발라 그 배우의 머리에 듬성듬성 이식해줬고, 김일성 역의 국정환은 무식하고 천박한 모습을 강조시키려고 우스꽝스럽게 분장시켰다.[* 해당 잡지 p24~25 참고.] *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는 이 드라마 이후로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무슨 이야기냐면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 자체가 표본이 되어, 이후 이승만 역을 맡는 배우들이 이승만 본인이 아닌, '''최불암의 이승만 연기를 모방'''하게 되었다는 것.[* 최불암이 이승만 역을 위해 당시 생존해 있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러 이화장에 갔다가 "당신 같은 광대가 어떻게 이박사를 연기할 수 있냐" 며 거절당했다.-- 근데 배우 자체가 옛날 기준으로 보면 광대인데 광대가 아니면 누가 연기합니까-- 그래서 당시 연출가 김정옥을 통해 그의 조카이자 이승만의 양며느리 조혜자를 대신 만나 취미, 가정생활 등의 정보를 들었다고 한다. [[http://www.nocutnews.co.kr/news/4112811|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 기사(노컷뉴스)]]] * [[김구|백범 김구]]로 출연한 [[이영후]]는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로 화제를 모았다. 이미 그 전에 MBC 탤런트가 되고 방송국 내부에서 어떤 [[높으신 분]]을 마주쳤는데 처음 들은 말이 "백범이로구먼" 이었다고. 더군다나 처조부(아내의 할아버지)가 '''임시정부 시절 법무장관 겸 국무위원을 지낸 [[박찬익]] 선생'''이고 아내의 숙모, 즉 박찬익 선생의 며느리 역시 김구 선생을 모셨던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하게 김구 선생 생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배역. 이후 2009년 [[한국방송공사|KBS]] 국권피탈 100년 특별기획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까지 약 '''30여년 간''' 각종 드라마에서 백범 역을 도맡았고, 백범기념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사망전대]] [[요단강 익스프레스|익스프레스]] 1등석 탑승 완료-- * [[이기붕]] 역의 [[박규채]]는 이승만 역의 최불암하고는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이긴 하나, 일단 스튜디오에 들어와 연기에 임하면 극중 시점의 위계질서에 따르고자 존댓말을 쓰며 얼굴이 통통해지지 않으려고 녹화 전날부터 금식을 했고, 이기붕의 생전 육성녹음 테이프를 구해다 청취해가면서 연기에 참고하려고 했다. * 고석만 PD와 김기팔 작가가 기관구경을 간 이유는 '여간첩 [[김수임]]' 방영 당시 '[[리강국|이강국]]과 와인을 마시고 사랑놀음을 하는 것이 간첩의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나... 그래서 연출도 바뀌었고, 극의 방향도 다소 느슨해졌다. 참고로 이 듀오는 1991년 드라마 〈[[땅(드라마)|땅]]〉으로 재결합했지만 정권의 외압으로 15회만에 [[조기종영]] 당했다. 이후 김기팔 작가는 그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다 1991년 12월 24일 5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http://v.media.daum.net/v/20180107100607117|##]] *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은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에서 촬영한 것.'''[* 영화까지 포함하면 이 드라마가 종영될 무렵에 제작된 [[오! 인천]] 이후 2번째.--하지만 오! 인천은 흑역사다.--] 당시는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이 되기도 전인, '''[[정부서울청사|실제 정부에서 청사로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이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정부과천청사]]가 개청하였고 이 청사에 남아있던 일부 기관이 [[과천시]]로 이전하였다. 해당 청사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에 철거되었다.] 주 · 조연 합쳐 배우 50여명, 외국인이 23명, 그리고 엑스트라는 무려 400명이 동원되었으며 제작팀은 이 장면을 위해 의상비만 1,000만원, 단상의 고급의자는 손수 제작한 것을 1세트 당 800만원, 이외 기타 비용 등 총 2,200만원을 들였다. 이승만의 승용차로 나온 [[링컨 컨티넨탈]]은 비행기 정비사 에드워드 핑클레턴의 것을 빌렸다. * 김구 선생 장례식 촬영은 당시 MBC가 정동에 [[경향신문|경향신문사]]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사옥부터 [[서울시립미술관]](그때는 대 · 고등법원 자리)에 이르는 정동길에서 진행했다. 이 때 동원된 엑스트라는 무려 1,000명(요즘 사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군중으로 출연하는 엑스트라들은 소복, 손수건 등을 자신들이 알아서 직접 준비해왔으며 통곡하는 장면도 연습없이 진행될 정도로 완벽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 당시 MBC-TV 전속이었던 남성 연기자가 [[이대근]] 빼고 전원 출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대근은 후속작인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 ~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 [[차지철]] 역으로 출연하였다.[*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도 이대근이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당시 차지철 역할은 송종원(1953~2011)이 맡았다. [[차지철#s-10|해당 항목]] 참조.] 여자 연기자 중에서는 [[김혜자]], [[김용림]], [[김영애]], [[김자옥]], [[김영란(배우)|김영란]] 정도만이 출연하지 않았다. 이걸로도 모자랐던지 최남현과 [[고설봉]], 최봉, 강계식, [[최명수]], [[권성덕]] 같은 영화/연극배우와 성우, 외국인들까지 끌어들였다. 1982년 2월 20일(제31호) 기사에 따르면 출연진들 중 최다역 출연자는 박상조인데, 제38회의 연기분과위원장을 비롯 김상돈, 이선근, 형사 등 총 4회 중복 출연 기록을 남겼다. 외국인 연기자들은 드라마 특성상 연인원 400여명이며 이들 중 어느 현역 주한미군 중령이 하지 군정장관 역을 자청했고, 프란체스카 영부인 역은 담당 연기자의 귀국으로 총 3번이나 바뀐 탓에 이승만 역의 최불암은 "미국 마누라들과 원없이 살았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외국인 출연자들의 통역은 영어 회화에 능숙한 김구 역의 이영후가 맡아 왔는데, "좀 쉴만 하면 사람이 바뀌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고, 그의 능숙한 영어회화 능력 덕에 외국인 출연자들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해당 잡지 p32 참고.] * 1950년대 [[자유당]]의 부정부패와 1960년의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과정이 적게 언급되거나 아예 생략되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도 [[박정희]] 시절 관련 비사가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등 어느 정도 자유로웠지만, 아직 그런 주제를 다루는 것이 위험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1995년에 [[중앙일보|중앙일보사]]가 편찬한 《중앙일보 삼십년사》에 따르면, 1982년 중앙일보에 연재된 정치비사물 〈제3공화국〉도 타 언론사들의 추종경쟁에 따른 정부의 외압으로 연재 중단되었다.] 마지막회 해설에서도 '훗날 다른 누군가가 더 자세하게 재현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외부의 압력을 암시하는 말을 했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간첩의 사랑을 다뤘다고 고석만 PD가 [[국가안전기획부]]에 연행되었을 정도였으니.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 주제들이 '박인수 사건', '김두한과 이정재', '연예인단과 임화수' 등 정치 외적인 부분들이 많아지며 당시 신문에서도 이를 비판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20800209212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2-08&officeId=00020&pageNo=12&printNo=18568&publishType=00020|政治(정치)드라마特性(특성) 잃어가는 느낌 제1공화국]]], 특히 김두한과 이정재편에서 싸움 장면만 계속 나오자 '여러분은 지금 제1공화국을 보고 계십니다'라는 자조적인 나레이션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 생략된 주제들은 후속작 〈제2공화국〉에서 심도있게 선보였다. * 주제곡은 [[에런 코플런드]]가 작곡한 [[https://www.youtube.com/watch?v=4NjssV8UuVA|〈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 드라마 덕에 널리 유명해졌다. 역대 [[공화국 시리즈]] 메인 주제곡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드라마에 삽입하려 만든 게 아닌, 이미 시중에 나온 곡을 사용한 것이다. 물론 해당 음악은 어레인지 버전이 이듬해인 1982년부터 1988년 2월까지 〈[[KBS 뉴스 9]]〉의 헤드라인 음악으로 사용되며 [[땡전뉴스]]의 상징곡 중 하나로 전락하는 불명예도 지니게 되었다(...) 오프닝 장면도 드라마 장면 혹은 출연 배우나 미니어처가 아닌 유일하게 실제 인물들의 활동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다. * [[북한]] 정권의 수립과정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작품이며, [[김일성]] 역의 [[국정환]]은 이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단, 이 역할과 관련해 곤욕을 치를 뻔(?) 했다. 시골 친구들이 술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배역 이름인 '''"[[경찰서 정모|김일성이 어쩌고" 하는 바람에 술집 주인 신고로 모조리 경찰서에 잡혀갔던 것(...)]]''' 국정환이 해명을 하느라 혼이 났다고 한다. 이것도 [[막걸리 보안법]]의 폐해 중 하나였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21200329212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2-12&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92&publishType=00020|#]] * [[김두한]] 역의 강인덕은 실제 김두한의 딸이자 연기 선배인 [[김을동]]으로부터 연기 면에서 도움을 받았고, 남대문시장 중고 옷가게를 돌며 10,000원짜리 양복 5~6벌을 구해다가 입었다. 해당 역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개 있는데, 1982년 제31호에 따르면 식당에만 가면 주위에서 "두한 형님이 왔다"며 자리를 양보받을 정도였고, 한 번은 [[시흥군]]에서 술집에 들어갔다 자리가 없어 나오려는데 한 50대 아저씨가 갑자기 "두한이 형님!" 이라 부르며 같이 한 잔 하자고 했단다. 알고보니 실제 김두한 부하였던 사람이었다는 일화가 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2120032921200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2-12&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92&publishType=00020|#]] * 이정재 역의 조경환은 뒤뚱거리며 쓰러지듯 엎드리는 연기로 인기를 모았는데, 전술한 1982년 제31호에서 배역을 맡을 당시 본인이 씨름꾼 출신임을 감안해서 이런 동작을 창안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 [[공화국 시리즈]] 중 유일하게 일주일 중 목요일에만 방영했다. 한 주에 수요일, 목요일 2편을 방송한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까지 합치면 평일 방영으로는 유이하다.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주말에 방송되었는데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과 〈[[제3공화국(드라마)|제3공화국]]〉은 일요일 저녁,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은 토요일, 일요일에 볼 수 있었다. * 전술한 1982년 제31호 기사에 따르면 전진한 역의 김상순은 스튜디오 녹화 전에 경기도 장흥에 있는 해당 인물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고, 38회에서 허장강 역의 박종관은 "선배 배우의 역을 그대로 맡는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고 토로했으며, 실제 녹화 당시 허장강을 추모하기 위해 검정 양복을 입고 나오기도 했다. 박인수 역을 맡았던 성우 박일은 방송 이후 "한번 만나자"는 이상한 전화가 폭주해서 애를 먹는가 하면, 김일성 역의 국정환은 이미지 탓에 앞으로의 연기 생활에 지장이 생기겠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 회당 제작비가 타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3배인 약 1,800만 원이었으며, MBC 전속 탤런트들이 이 드라마에 나오고서 받은 출연료는 4,000만원 선이었다. 제작비의 경우 지금으로 치면 약 8억 5,000만 원 정도되며 당시 드라마 제작 상황에서는 정말 큰 돈을 투자한 것이었다. * 아무래도 옛날 작품이라 그런지 야외 촬영분이 별로 없다. 건물 바깥 장면들도 거의 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꾸미고 촬영했다. * [[임화수|김희갑 구타 사건]]을 다룰 때 '''실제 [[김희갑]]이 출연하려고 했다. --멘탈 甲-- ''' 하지만 촬영을 며칠 앞두고 스케줄 문제로 중동에 가는 바람에 성사되지는 못했다. 다급해진 제작진은 부랴부랴 김희갑 닮은 배우를 녹화 4일 전에 겨우 찾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연극배우 [[정진(1941)|정진]]이었고 무명이었던 그는 이 작품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1982년 제31호 기사에 따르면 갑자기 유명해진 터라 인사받는 데도 진땀을 흘렸다는 일화도 있었으며, 정진 역시 어린 시절 김희갑이 나온 영화 <오부자>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으며 친구들로부터 '합죽이'라 불리기도 했다. * 담당 PD와 배우가 현장에서 직접 [[현피]]를 뜬 한국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당시 드라마의 제작진은 [[오지명]]을 [[임화수]] 역으로 미리 내정을 해뒀지만, 아직 드라마에 임화수가 등장하지 않고 있었기에 사전에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었는데, 오지명에게도 미리 캐스팅 통보가 가질 않았고, 캐스팅 사실을 몰랐었던 오지명은 자신의 캐스팅 제외에 불만을 가지고 담당 PD 고석만을 찾아갔고, 말다툼을 하다가 급기야는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 것이다.~~메소드 연기~~ 사태는 결국 담당 작가 김기팔의 중재로 오지명이 먼저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406294|링크]] * 1997년 케이블 채널 드라마넷에서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1997051919000201|재편성한 바 있으며]], 2016년부터 [[올레TV]] VOD에 추가된 후 2017년부터는 [[MBC Archive|MBC 아카이브]] 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물론 둘 다 유료. 2019년 12월 30일부터 [[엣지TV]]에서 재방영되고 있는데, 본래 회당 90 ~ 100분 분량을 60분 분량으로 잘라서 방송하고 있다. 2021년 1월 기준으로 MBC 홈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on]]에서 구매 가능하며 [[wavve]]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 여기서 나오는 제공자막은 상술한 대로 [[일본]]의 모든 방송국([[일본방송협회|NHK]]를 제외한 5대 지상파[* [[닛폰 테레비]], [[TBS 테레비]], [[테레비 아사히]], [[후지 테레비]], [[테레비 도쿄|TV 도쿄]]] 및 독립 채널)에서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스폰서 로고를 사용하였으며 공화국 시리즈 중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는 1982년부터는 이러한 방식이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이후 규격화된 제공자막을 사용했다. 그래서 후속작인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부터는 세로쓰기 자막으로 나왔다가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부터 가로쓰기 자막을 사용했다.] * 훗날 고석만 前 PD는 당시 기획했던 표재순 국장과 김기팔 작가와 함께 위에도 서술했지만 12회 '''여간첩 김수임'''편 이후 2018년 칼럼을 통해 안기부에서 있었던 상황을 기재하였다([[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838541.html|관련 칼럼]]). 당시 김수임 역할은 배우 [[정애리]]가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