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태춘 (문단 편집) === 회한과 희망의 공존 === [[파일:external/deecompany.cafe24.com/1045555_500.jpg|width=350]] 정태춘, 박은옥, 정동진/건너간다 [youtube(UVA99gKVzhI)] 6번 트랙 '건너간다' [[파일:jct03.jpg]] 정태춘, 박은옥,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youtube(ZY17iFYqt5o)] 타이틀곡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1998년 2월에 발매된 '건너간다'와 2002년 11월에 발매된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이 앨범 재킷은 또다시 그의 팬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만드는데, '건너간다' 앨범의 재킷에는 7이라는 숫자가, 그 다음 앨범인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 앨범의 재킷에는 '열 번째 앨범'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박혀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그의 앨범 순서를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카운트하는지 다시 한 번 혼돈에 빠트리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는 이전 앨범인 '92 장마, 종로에서'가 가지는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회한과 공존하는 희망'의 정서는 이전의 것과는 다소 다른 것이어서 단순히 민주화, 혹은 진보 세력의 패배에 의한 상실감과 그에 대한 극복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변화상에 따른 '회한과 희망'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의 한국사회는 또다른 의미에서 파란만장한 시기여서,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형선고를 받았고 [[김일성]]이 사망했으며, [[연세대 사태]]로 인해 대학 운동권이 그야말로 박살난 가운데 이미 대학생들은 취업을 통해 기존 기득권층에 편입되기만을 희망하는 존재들로 전락했다.[* 이 당시 그는 대학가 축제에 초청받아 축제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본 뒤 공연을 보러온 대학생들을 향해 쓴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계급화로 나뉘어 상위 계급이 기득권을 차지하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들을 만든 대형 열차사고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국가공무원 선발에서 하위 계급의 쿼터를 늘인 것에 분노한 브라만 계급 대학생들이었다는 것을 사례로 자주 들면서 당대의 대학생은 더이상 상아탑의 고귀한 지성인이 아니라 그저 기득권에 어떻게 하면 잘 편입될 수 있나만을 신경쓰는 찌질한 존재들로 전락했다라고 분노하는 모습이 당시 대학 축제에 초청받은 그의 모습이었다. 당연히 그는 이 시기 이후 대학 축제에 초청을 받아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X세대]]라는 그 누구도 모를 용어로 정의되는 이들과 오렌지족들이 생겨났고 소비가 미덕인 시대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가운데, 양극화의 극단적인 부작용으로 [[지존파]]가 등장하고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그리고 이러한 다이내믹한 변화들은 [[IMF 사태]]로 귀결되어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간 듯 한국 사회 전체를 휩쓸었다. 그러므로 그의 노래들에 나타나는 회한들은 더더욱 깊게 침잠되었다. '92 장마, 종로에서'에 수록된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 나오듯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 차량기지 마저 지나쳐 희망의 시대로 나아가고자 했던 그의 정서는 '건너간다'에 이르러서는 '다음 정거장은 어디'인지도 모르고 '이 버스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무표정하고 지친 이들을 싣고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가'는 것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희망의 정서 또한 여전하여 그는 여전히 정동진에 떠오르는 '쌍무지개'와 '어둠 걷혀 깨는 새벽길 모퉁이를 돌아' '투명한 유리창 햇살 가득한 첫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을 끝으로 10년간 침묵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