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청래 (문단 편집) === 학원 운영 === 출소한지 몇개월 후인 1992년 정청래는 재수 시절 친구이자, [[전대협]]의 모태가 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조직을 이끌었던 동지인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문과]] 출신의 양태회와 동업으로 학원을 창업했다. 학원 이름은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당시 대규모 시영아파트 단지가 있던 [[서울]] [[마포구]] [[성산동(서울)|성산동]]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었다. 성산 시영아파트 단지는 당시 개발 중에 있던 [[노원구]]를 제외하면 당시 서울 강북 최대의 아파트 단지였다. 서울에서 매우 특이하게도 소평수 아파트로만 구성된 단지였기 때문에 현재도 단지가 노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초등학생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정청래는 [[공대]] 출신이었으나 [[수학]]이 아닌 [[영어]]를 가르쳤다. 미 대사관저를 점거 테러하며 미 대사 추방, 대통령의 미국 방문 반대 등을 요구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 한편 양태회는 불문과 출신이었으나 [[국어]]를 가르쳤다. 정청래는 교육 경험이 없었지만 재수 시절 경험과 문법 위주 강의로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양태회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과외나 학원에서 잔뼈가 굵었고, 나중에는 비상교육을 차려 사교육 재벌이 되는 등 사교육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원장들이 청소와 잡일까지 다해야했다고 말했지만 이런 시절은 개원 후 잠시였고, 이 학원은 곧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길잡이 학원은 불과 2년여 만에 직원이 100여 명일 정도의 엄청난 대형학원으로 성장했다. 당시 길잡이 학원은 마포 성산 지역에서 스파르타식으로 대단히 유명했다. 학원 이름이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체벌이 심한 것으로 유명해 동네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에서는 가면 애 잡는다고 애잡이 학원으로 더 많이 불렸다. 길잡이 학원은 90년대 초 마포 성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90년대 중반 인근 연세대, 서강대 등을 중심으로 명문대 출신들이 가르치는 경쟁력 있는 학원들이 속속 등장했고 지나친 체벌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1996년 공동원장인 양태회와 정청래가 갈라서며 문을 닫게 되었다(문을 닫은 건 아니고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입시학원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양태회는 학원을 접은 직후 [[비상교육]]을 창업했고, 한때 대표적인 사교육 재벌 중 한 명으로 불릴 만큼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정청래는 이후 정계에 투신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