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청래 (문단 편집) === 학창 시절 === [[1965년]] [[5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아버지 정해일^^(1921년)^^과 어머니 박순분^^(1922년)^^ 사이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현재는 5남매만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형과 둘째형이 15살 차이가 나는데, 이 시기에 [[홍역]]으로 아이 5명을 잃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cheongrae1/posts/312775380220156|그가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회상한 글]]에 해당 이야기가 잘 나와 있다. 그런 탓에 자기 큰조카보다 자기가 5달 늦게 태어난 막내삼촌이 되었고, 어머니는 당시 그를 낙태하려고 [[대전시]]의 [[산부인과]]를 2번이나 갔지만, 뱃속 정청래의 태동이 너무 활발했던(...) 탓에 차마 지우지 못하고 낳았다고. 정청래는 이것을 생존권투쟁이라고 표현했다.] 금산에서 석막초등학교와 진산중학교에 다녔고,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올라와 [[보문고등학교(대전)|대전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교 졸업 후 대입에 낙방하고 상경하여, 서울의 한 유명 재수학원에서 1년간 재수한 후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85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때 경험이 나중에 학원을 차렸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 직후 1학년때 과대표에 출마하며 '나의 꿈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후 [[운동권]] 활동에 투신했다. [[전대협]] 산하 서총련에서 활동했다. 재학 중 1988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요원들에게 새벽 2시에 끌려가서 어딘지도 모른 곳에서 눈이 가려진 채 무차별 폭행을 3시간 동안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름과 성별 등 그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당시 대학생들은 학생운동 투신 중 끌려가서 폭행을 당하고 일부는 [[군대]]로 끌려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