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진석(추기경) (문단 편집) ==== [[천주교 청주교구|청주교구]]장 시절 ====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iFbBtHQZfOc)]}}} || 귀국 직후인 1970년, 만 38세의 나이로 천주교 청주교구의 제2대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주교 서품식의 주례는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맡았다. 노 대주교는 과거 정 추기경의 [[세례성사]]와 사제 서품식도 집전한 바 있다.[* 천주교 [[7성사]] 중 [[세례성사]], [[미사|성체성사]]{{{-3 ([[영성체|첫영성체]])}}}, [[견진성사]], [[고해성사]], [[성품성사]]를 모두 [[명동성당]]에서 받았다고 본인이 직접 말하였다. 이후에는 서울대교구장 은퇴 미사, 그리고 사망에 따른 장례미사까지 명동성당에서 거행하게 되었다.] 그는 28년 동안 청주교구의 교구장으로서 사목을 수행하였다. 그가 교구장에 착좌할 당시 청주교구는 미국인 사제가 19명이었던 반면, 한국인 사제는 6명에 불과했다. 이에 그는 '교구의 한국인 사제를 100명까지 늘리겠다'고 결심했고, 훗날 청주교구장을 떠날 시점에는 청주교구의 한국인 사제가 106명으로 늘어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정 추기경은 이를 하느님의 도움 덕분이라고 회고하였다. 또한 청주교구장 시절 오웅진 사도 요한 신부를 물심양면 도와 [[꽃동네]]의 창립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오웅진 신부는 2021년 5월 1일 정 추기경의 장례미사에도 참석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kZxorvr_UeE)]}}}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