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주영 (문단 편집) === 사망 === >120살까지는 살 겁니다. 그때까지 일할 수 있다면 해야지요. 아직 은퇴하기에 나는 너무나 젊습니다.[br]- 1999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서 >[[남북통일|남북이 통일된다면]] 내 고향 통천으로 돌아가서 남은 삶을 보낼 겁니다.[br]- 1999년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서 1999년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정주영은 말년까지도 건강한 편이었다. 당시 84세의 고령이었던 그는 90세까지는 현역으로 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2000년 5월에는 건강을 이유로 명예 회장직을 사퇴했다. 허나 그는 말년에 크게 편안하지 못했다. 장성한 자녀들이 불화를 일으킨 탓이다. 이를 [[왕자의 난#s-3.2|현대(기업)판 왕자의 난]]이라 부른다. 당시 언론에도 도배되며 난리가 나자, 정주영은 몸소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식들 간의 불화를 해소하고자 노력했으며 죽기 직전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을 통해 이사회, 전문 경영인 중심의 투명한 경영을 천명했으나 그 직후 2001년 3월 21일, [[폐렴]]으로 인한 급성 호흡 부전증으로 [[사망]]하고 만다. 이때가 향년 85세. 그래도 증손자까지는 봤다.[* 장손인 정의선의 장남 정창철은 1998년생으로 정주영 회장이 별세하기 3년 전에 태어났다.] 정주영 사후 현대가는 현대, [[현대백화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으로 사분화됐다. 이는 세 아들 편에 각각 줄을 섰던 여러 가신의 농간이 크게 작용했다. 차남이자 현대자동차를 이끌고 있는 [[정몽구]]는 이를 증오해 선대의 가신을 모두 가차없이 쳐냈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어떤 가신도 진심으로 믿지 않는 태도를 보여 일명 무원칙(...)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매년 정주영 회장을 기리며 그의 기일에는 생전에 머물던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자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고 이후에는 정몽구 회장의 [[한남동]] 자택으로 장소를 옮겨 거기서 제사 지내는 모양.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학원]] 등에서도 추모식을 연다. 2015년에는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를 했는데 기념식에서는 사실상 장남인 차남 정몽구가 가족 대표 인사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