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주영 (문단 편집) == [[범현대가|가족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범현대가)] 공식적인 자식만 무려 8남 3녀. 척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11남매 전부 본처 소생일 리가 없다. 장남 [[정몽필]]은 본처인 변중석 여사가 시집와 보니 이미 태어나 있었다. 젊었을 시절에 만났던 여배우들에게서 나온 [[사생아]]도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있기는 분명히 있었고 여배우들이 정주영에게 돈으로 매수를 당해서 만났다는 설이 있었을 정도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어차피 정주영 세대에는 돈과 권세가 좀 있다 싶으면 [[첩]]을 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시절인지라 그걸로 큰 흠을 잡히지는 않았기는 했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주영 사망 이후 일주일도 안 돼서 모친(들)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친자 확인 소송을 냈고 DNA 검사와 상속 절차 및 기타 잡다한 과정을 밟고 유산을 싹 챙겨 돌아갔다. 농담으로 정주영이 모르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비자금|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며]], 둘째는 [[사생아|자기 자식 숫자가 얼마인지 모른다고 한다.]] 원 출처는 1997년에 방영했던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의 정주영 인터뷰 내용이다. 원래의 방송에서는 정주영이 자기 재산 액수를 굳이 세어보지 않으며 아들들이 많아서 자'''손'''(아들과 손자)이 몇 명인지 모른다는 뉘앙스의 인터뷰였는데 이게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블랙 코미디]]에 가깝게 바뀐 것이다. 아내인 변중석 여사는 조용한 내조로 유명했다. 정주영과 같은 통천군 출신으로 변 여사 동네에 살던 정주영 숙부의 선으로 결혼한 후 정주영 따라 서울에 와 분단 이후 안타깝게도 북에 있던 친가와 헤어져 정주영과 함께 고생해가며 평생을 해로했다. 생전 큰 욕심없이 검소한 생활을 하며[* 애초에 정주영과 결혼할 무렵만 해도 정주영은 부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변 여사 나이는 20살도 안된 시절이었다.] "[[재봉틀]] 하나와 아끼던 [[장독대]]가 내 재산의 전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이 사준 자동차는 집에 놔두고 도매시장에 나가 채소나 잡화를 사서 용달차에 실은 후 그 차를 타고 왔으며 집에서는 언제나 몸빼바지 차림이어서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변 여사를 일하는 아주머니로 착각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며느리]]들에게는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마라.'고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다.[* 며느리들이 이 말을 새겼는지 현대家의 안주인들은 [[현정은]] 회장(정몽헌 회장 부인)이나 남편의 정치활동 지원을 위해 외부로 나선 김영명 여사([[정몽준]] 전 의원 부인) 등을 제외하면 일반인에게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손자며느리 격인 [[노현정]] 전 아나운서도 결혼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보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다만 이는 현대가만 그런건 아니고 다른 재벌가들도 일반적인 형태긴 하다.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라 장단점이 있다.] 평소 [[보살]] 소리 들을 정도로 성격이 온화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변중석이 남편인 정주영에게 큰 소리를 친 적이 한 번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장남 정몽필의 사고사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당시 정주영은 정몽필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업무를 모두 마치고서야 귀가했다. 집에서 소식을 듣고 통곡 중인 변중석 여사는 집에 들어오는 정주영을 보자마자 '사업 하느라 애들 다 죽인다.'며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님에도[* 정주영은 [[첫사랑]]이 있었지만 집안간 반대로 헤어졌는데 둘 사이에 태어난게 정몽필이었다. 즉, 변중석과 결혼할 때 이미 정주영은 아들이 한명 있었고 변중석은 계모지만 정몽필을 길렀다. 이런 연유로 정주영은 첫사랑도 가슴에 담아뒀는지, 90년대 소떼 방북 시절 김정일과 만나서도 고향 첫사랑 좀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때문에 김정일이 실제로 알아봤는데 마침 몇년 전 사망했다고..] 첫째 정몽필을 집안의 진정한 장남으로 여겼던 것이다. 변중석 여사는 차남 몽구, 3남 몽근, 장녀 경희, 4남 몽우, 5남 몽헌 다섯을 낳았으며 6남 몽준부터 7남 몽윤, 8남 몽일은 모두 외부에서 데리고 온 자식으로 생모가 각자 다르지만 태어나자마자 모두 호적에 올려 줬고 첩의 자식으로서 설움을 받지 않게 키웠다고 한다. 중견 배우 김 모 탤런트로 딸의 친자 확인 소송을 했다는 이야기가 70-80대 노인들의 증언으로 나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주영의 딸을 낳고 친자 확인 소송을 벌인 사람은 중견 배우 김 씨가 아니라 젊은 시절에 잠깐 배우 활동을 했던 60대 할머니였다. 결국 중견 배우 김 씨는 [[헛지목]]의 [[http://sports.donga.com/3/all/20170413/83837244/1?gid=83843576&srev=1®date=20170413|피해자였던 것이다]]. 용자와 같이 기업을 일으키고 시련을 버텨내고 성공했으며 멋지게 세상을 살다가 간 풍운아이자 대인배인데도 이러한 보기 민망한 주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편 현대그룹에서 분가한 정주영 회장의 여러 아들은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 회장을 제외하고 군 복무를 전부 수행했다. 평소 정주영 회장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해서 아들 모두 군 복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몽구 회장은 일반인처럼 육군 [[병장]] 만기 제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정몽준 전 의원이나 정몽윤 회장은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ROTC)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정주영 아들들의 군 복무 수행과 혼외자 논란 때문에 [[제16대 대통령 선거|16대 대선]]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캠프와 주요 대권 주자 중 하나로 손꼽히던 [[정몽준]] 캠프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졌던 사례가 있다. 이회창 캠프 측에서 먼저 "정몽준 후보는 고 정주영 회장의 적자가 아니라 서자다."라고 인신공격을 시작하자 정몽준 캠프 측에서 '정몽준 후보의 형제들은 다 군대 복무를 무사히 끝마칠 만큼 건강해서 굳이 밖에서 자식을 데려올 필요가 없다. 체중 미달로 군대에도 못 간 이회창 후보네 집안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라고 받아쳐버린 것이다. 사실관계로 따지자면 정몽준이 혼외 자녀인 것은 정설이지만 후보 본인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는 문제로 인신공격을 가한 것이 이회창 캠프 측인데다 당시 이회창 후보 자녀의 병역 논란과 정주영 일가의 높은 병역 이행율이 국민 감정에 끼친 영향도 있었기 때문에 이회창 캠프 측이 망신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았던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