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조국 (문단 편집) === 국가대표 경력 === [[파일:natjg.jpg]] 고교 최고 스트라이커로 연령별 대표팀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정조국은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월드컵]] 대회 당시 대표팀 훈련장에서 선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였다.[*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1983)|최성국]]~~, ~~염동균~~ 4명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이들을 '한국 축구의 미래'라고 표현하며,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폐막까지 훈련 도우미로써 대표팀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었다. 실제로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이후부터 월드컵 끝날때까지 월드컵 멤버들과 똑같이 훈련받았다. 히딩크감독이 자서전에서도 밝혔듯이 대표팀 선배들과 그리고 월드컵 가까이에서 훈련과 경험을 하면 도움이 크게 될거이기에 훈련멤버로 뽑은거라 밝혔다. 2006년 1월 18일 [[아랍 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UAE]]와의 친선 경기를 통해 드디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6년 9월 6일,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대만]]과의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2007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팀의 8-0 승리를 이끌었다. 2008년 10월에는 9개월 만에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부상으로 하차했다. 2009년 1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소집되었고, 5월에는 부상으로 하차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2011년 아시안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예비 명단에 들어갔으나 부상과 피로 누적을 염려해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였다. 2011년 6월 3일 세르비아 전 평가전 출전을 끝으로, 더이상 대표팀에 소집되고 있지 않다. '''성인대표팀 13경기 4득점''' 연령별 대표팀부터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국내 정상급 실력을 가진 스트라이커였지만, 정작 프로 데뷔 이후 성인대표팀에서는 많은 경기를 못 뛰었고, 메이져 대회 발탁은 전무했다.[* 그나마 프로 데뷔 이후 참가한 대회를 보자면 [[2006 도하 아시안 게임|2006 도하 아시안게임]]정도가 있다.] 하필 정조국이 최고의 모습을 보이던 2000년대 후반은 역대급 시기라고 불릴만한, 걸출한 공격수 스타 플레이어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당시는 꽃미남 슈퍼스타 [[안정환]], [[이동국]]뿐만 아니라 [[김은중]], [[박주영]], [[이근호]], 이외에도 [[조재진]],~~ [[최성국(1983)|최성국]]~~ 등 공격수 자원이 워낙 넘쳐나던 시절이라, 웬만한 실력으로는 국가대표팀 승선이 쉽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