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조(조선)/가계 (문단 편집) == 상상 임신([[1781년]], [[1787년]]) == 《정조실록》에 의문의 산실청 기록이 두 번 보인다. 산실청은 비빈의 출산을 돕기 위해 설치하는 임시관청으로 보통 출산 6일 뒤에 철수된다. 《정조실록》 첫 산실청 기록은 [[1781년]](정조 5년) 1월, 후궁 [[화빈 윤씨]]의 산실청 설치 기록이다. 10개월 뒤인 《일성록》[[1781년]] 11월에 화빈의 출산을 고대하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뒤 어디에도 출산 기록은 없고, 화빈의 산실청이 무려 30개월이나 지속되었다는 기록만 보인다. 비슷한 케이스로 [[1787년]](정조 11년) 9월, 이번에는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가 [[임신]]하여 산실청을 설치했다. 정조는 6년 전 화빈이 임신하자마자 산실청을 설치했으나 출산에 이르지 못한 실망감 때문인지 이번에는 해산달에 산실청을 설치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출산하지 못했고, 결국 [[1788년]](정조 12년) 12월, 산실청을 철수했다. 이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산실청이 1년 넘게 지속되었으나 어디에도 출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임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상상 임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 5년([[1781년]]), 정조 11년([[1787년]])은 [[정조(조선)|정조]]가 무남이던 때였다. 왜냐면 정조의 장남인 문효 세자는 정조 6년~정조 10년까지 살았고 정조의 차남인 순조는 정조 14년([[1790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빈 윤씨|화빈]]처럼 중전 [[효의왕후]]도 상상 임신이었지만 화빈과는 다른 점이 [[효의왕후]]의 경우에는 상상 임신이었어도 산실청을 철수한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는데 반해, [[화빈 윤씨|화빈]]은 산실청을 철수한 기록도 없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정조(조선), version=457, paragraph=6)] [[분류:정조(조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