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의개발당 (문단 편집) == 역사 == 정의개발당의 뿌리는 [[1997년]] 튀르키예 정계를 뒤흔들어 놓은 복지당(Refah Partisi) 해산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네흐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 전 총리가 창당한 복지당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로 철저한 [[세속주의]] 아래 금기시되어 오던 [[이슬람주의]] 노선을 대놓고 표방하는, 경제개혁과 [[복지]] 확대를 외치며 집권한 [[포퓰리즘]] 정당이었다. 복지당의 당수였던 에르바칸은 [[아타튀르크]] 이래 튀르키예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주의]] 총리였다. 허나 [[튀르키예/정치]] 항목에서도 보이듯 강한 [[세속주의]]적 성향을 지닌 군부는 에르바칸 총리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 위협했다. 결국 무혈 쿠데타로 총리는 사퇴, 복지당은 쿠데타 이듬해인 [[1998년]] [[1월 16일]] 해산된다.[* 이게 튀르키예 역사상 마지막으로 성공한 [[쿠데타]]로, 20여년 후 일어난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유사한 사건]]은 그 동안 정치적 감각과 인기를 쌓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난다.][* 여담으로 이 정당 해산 직후 그동안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된 '''1조 [[튀르키예 리라]]'''를 반환받으려고 보니 '''당 관계자들이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후폭풍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일명 [[https://tr.wikipedia.org/wiki/Kay%C4%B1p_Trilyon_Davas%C4%B1|1조 실종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복지당이 해산되기 직전에 당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은 [[1997년]] [[12월 17일]] 미덕당(Fazilet Partisi)을 창당하여 세를 불리나 이 정당 역시 대놓고 이슬람주의를 떠들어대는 바람에 [[2001년]] [[6월 22일]] 강제 해산당했다. [[1997년]] 당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이스탄불]]의 민선 시장을 지내며 에르바칸 전 총리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었다. 그는 복지당이 해산되었지만 정계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와 개혁적 공약으로 인기를 높여 가다가, [[2001년]] 복지당 시절의 동료들과 때마침 해산당한 미덕당 잔당들[* 이때 미덕당 내 강경파들은 [[행복당]]을 창당한다.]을 모아 절치부심하여 정의개발당을 창당한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군을 장악한 세속주의자들의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야 했었지만 그 4년 동안 여론은 뒤바뀌어 에르도안에게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의개발당은 창당 다음 해인 [[2002년]] 총선에서 총 550석 중 무려 363석을 차지, 압도적인 제 1당이 되어 단독내각을 수립하는 기염을 토한다.[* 사실 세속주의자들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슬람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 [[봉쇄조항]]을 10%까지 올려 놓았는데, 본인들이 여기에 걸려 [[공화인민당]]만 제외하고 직전 집권당이던 민주좌파당을 비롯한 기타 정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 초기의 정의개발당은 말 그대로 [[빅텐트]] 정당으로, 이슬람 성직자부터 기업인들, 심지어 개혁 성향의 세속주의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된 정당이었다. [[공화인민당]]과 민주좌파당(DSP)[* Demokratik Sol Partisi. 정의개발당 바로 이전의 집권당으로, 뷜렌트 에제비트(Bulent Ecevit) 전 총리가 [[1980년]] 쿠데타 이후 창당한 정당. 현재는 [[공화인민당]]에 거의 흡수되고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다.] 등 전통적인 세속주의 정당의 실정에 질린 튀르키예인들은 부패 청산과 복지 확대, 경제 성장을 부르짖는 정의개발당에 표를 던졌다. 이때만 해도 이념적으론 오히려 [[중도우파]]적 성향에 가까웠다. 당시 외신에서는 [[유럽]]의 기독교민주당과 비교했을 수준이었으니.. 집권 초기 AKP와 에르도안 내각은 민주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매우 부각시키며 정치를 했다. 외교적으로도 친서방적인 정책 기조를 보이며 [[유럽 연합|EU]] 가입을 위해 애썼고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쳤다. 화폐개혁을 통해 십수 년 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던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자세한 것은 [[튀르키예 리라]] 항목 참조)을 일소시키고 경제성장률 역시 괄목할 만한 지표를 찍으면서 [[2007년]], [[2011년]]의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득표율로 순항을 거듭했다.[* 다만 [[2014년]]부턴 다시 튀르키예 경제가 후퇴하고 외환위기 경고에 물가도 폭등해 정의개발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70907574169507|#]]] 또한 국내 정치적 문제에서도 세속주의 정권 아래에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회피해 오던 전직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케난 에브렌]]을 90대의 나이에도 법의 심판에 회부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의지를 보였고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튀르키예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