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욱 (문단 편집) === [[원소(삼국지)|원소]]와의 화친을 반대 === 그해 가을, 갑작스럽게 황충 즉 메뚜기들이 대량 등장함으로서 연주 부근에서 대기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군량미 문제로 여포와 장막은 불가피하게 철수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 판정승을 거둔 셈이지만 '''연주 부근''' 즉 연주 자체에서도 메뚜기가 들끓어 겨우 지켜낸 3 성을 포함해 연주 일대의 식량이 되어줘야할 추수철의 곡식들의 태반이 날라가버려 말그대로 '''연주 전체가 굶어죽기 일보직전'''까지 몰리게 된다. 까고말해서 더도 덜도 할거없이 위나라도 못가고 자칫하면 굶어죽고 끝날뻔했다. 이때 [[원소(삼국지)|원소]]는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 가족들을 업으로 옮겨 살도록 권한다. 정욱전에서는 원소가 '화친'을 권했다고 적혀 있지만 이 정욱전의 필자인 진수가 위왕조를 시조로 모시는 사람이라는 걸 고려하면 '화친'은 어디까지나 조조를 띄워주기 위함이라 보는게 옳다. 이 당시 조조는 뭐로 비교해도 원소와 '화친'이라는 글자가 들어갈 정도로 원소에게 비빌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 실제로는 자립하려는 조조의 태도를 보고 그의 태도를 확인 및 견제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즉 혼자 자립해서 굶어뒤지거나 다시금 남들 앞에서 자기 아래에 무릎꿇거나 2지 선다를 하라고 강요한 셈. 곤궁한 상황에 있던 조조는 이를 수락하려 했다. 그러나 마침 외지에 사신으로 나갔다 돌아온 정욱이 이를 듣고 조조를 찾아가 다그치며 원소의 제안을 거절하게 하고 조조를 분발하게 만들었다. ||"장군께서 일이 닥치자 두려워하신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깊이 생각치 않은 것입니까! 무릇 원소는 연과 조(趙) 땅에 의거하여 천하를 병탄해 차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지혜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 자신을 스스로 헤아려 보면 그보다 아래라고 여기십니까? 장군의 용과 범 같은 위엄으로 가히 한신이나 팽월(彭越)같은 일을 이룰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연주가 비록 쇠잔해졌지만 아직 세 성과 능히 싸울 있는 전사들이 있어 만명이라도 항복시키지 못합니다. 장군의 신이한 무력으로써 문약(순욱)이나 저 등과 함께 저들을 거두어 기용하신다면, 패왕의 대업을 가히 이룰 수 있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 다시 생각하십시오." - 정욱전 || [[위략]]에는 이렇게 설득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전횡]]은 제나라의 세족으로 형제 3명이 번갈아 왕노릇 했는데, 천리나 되는 제나라 땅에 웅거하고, 백만의 병사를 끼고서 제후들과 더불어 남면(南面, 왕이 되었다는 뜻)하고 고(孤)라 칭했습니다. 얼마 뒤 [[한고조]]가 천하를 얻게 되자 전횡은 도리어 항복한 포로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때의 일에 당하여 전횡을 어찌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조조가 말하기를 >이것은 진실로 대장부의 지극한 치욕이요 라 했다. 정욱이 다시 말하기를 >제 어리석은 견해로는 (공의) 큰 뜻은 알지 못하지만, 장군의 뜻이 전횡만 못하다고 봅니다. 전횡은 제나라의 일개 장수였을 뿐인데 고조의 신하가 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가솔들을 업성으로 보내고자 하시는데, 그러면 장차 북면(北面)하고 원소를 섬기게 됩니다. 무릇 장군의 총명함과 신이한 무력으로는 도리어 수치을 겪지 않고 원소를 아래에 둘 수 있으니, 제 생각으론 장군께선 이를 부끄럽게 여기셔야 합니다. 그 나중에 했던 말이 정욱전 본전과 대략 같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