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용운 (문단 편집) ==== 2009~2015 시즌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001/2009/10/19/PYH2009101915560001300_P2.jpg|width=100%]]}}} || [[200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픽인 [[정성철(야구)|정성철]], 2차 1픽인 [[안치홍]]에 이어서 비교적 높은 순위로 지명을 받았지만 별다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2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2009년 2군에서도 방어율이 4점대를 넘는 등, 2군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썩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런 정용운이 2009년 9월 2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깜짝 선발로 등판하면서 잠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릭 구톰슨]]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선발 공백을 잠시 메우기 위해 등판했던 것. [[이강철]] 당시 불펜코치의 말로는 커브가 좋다는 말만 듣고 [[조범현]] 감독이 써먹어 보려고 했다고. 그러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1⅓이닝 2실점을 기록한 것이 첫 1군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이 때의 1군 등록을 시작으로 눈에 띄었는지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를 밀어내고 주전 원 포인트 릴리프를 차지하고 있었던 [[박경태(야구)|박경태]] 대신 '''[[2009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정용운이 포함되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 등판해서는 [[박재상]]에게 볼넷, [[박정권]]에게 힛 바이 피치를 내줄 뻔했으나 박정권이 그 공에 배트를 휘둘러 삼진을 당했다. 박정권은 이 타석 삼진을 제외하고 박정권은 이 날 경기에서 4타수 4안타에 홈런까지 기록했으나 정작 정용운의 힛 파이 피치에 배트를 휘둘러 5타수 4안타로 마감했다. 이후 곧바로 강판되어 이후까지 출전하지 못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명단에 들어갔기 때문에 정규시즌에서 훨씬 활약을 한 몇 선수들이 얻지 못했던 우승반지를 운 좋게 받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홍세완]] 다만 이 때 당시 KIA의 불펜 상황을 보면 좌완 계투진은 그야말로 궁핍한 상황이었다. 당시 KIA의 불펜 승리조는 [[곽정철]], [[손영민]], [[유동훈]], [[한기주]] 등 전부 우완투수 뿐이었다. 그외 불펜투수도 [[임준혁]], [[오준형]], [[고우석(1984)|고우석]] 등 우완투수. 그나마 있던 좌완은 사실상 [[박경태(야구)|박경태]] 뿐이었다. [[김영수(야구선수)|김영수]]는 말할 것도 없고, 겨우 그해 8⅔이닝 던진 [[진해수]]도 한국시리즈에 부름을 받지 못하고 가을에 군 복무하러 상무로 갔다. 그랬기 때문에 막판에 1군에 올라와서 4경기 3⅓이닝 공을 던졌던 정용운이 좌완이라는 이유로 한국시리즈 명단에 포함되었다. 당시 정용운은 1년차 고졸신인으로 같은 입단동기인 [[안치홍]]과 더불어 입단하자마자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을 쌓았다. 다만 [[안치홍]]은 그 해 주전 2루수+ 최연소 올스타 선정+ 최연소 올스타 mvp+ 한국시리즈 추격의 타점 2번+ 한국시리즈 동안 6번의 호수비 + 최연소 한국시리즈 홈런까지 기록했으며, 신인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이용찬에게 밀렸고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올랐지만 정근우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임팩트가 강했다. 그러나 여전히 투수로서의 능력은 많이 올라오지 못했고, 2010년에도 1군 10경기에 나와 8이닝 동안 10실점 6자책점 ERA 6.75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2011 시즌 종료 후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에 들어갔고, 2013년 소집해제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1군에 올라오지 못해 2014 시즌 후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