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연주(언론인) (문단 편집) ====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개입 ==== 1980년 8월부터 1985년 2월까지 KBS 사장을 지냈던 [[이원홍(1929)|이원홍]]과 함께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양대산맥으로 통했다. [[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newsview?newsid=20080525120513968|#]] 사장이면 사장답게 경영에만 힘써야 하는데, 프로그램 제작에 깊이 관여하며 PD 지휘까지 하려 했다는 것. 일단 정연주가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예능에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일요일, 나아가 주말 대표 예능이였던 일요일은 즐거워를 폐지한 후 [[일요일은 101%]]를 편성했다는 것이다. 당시 1998년 [[IMF 사태]] 이후로 KBS 일요일 예능은 2006년까지 긴 침체기에 빠지고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를 못받고 욕먹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01%는 일요일은 즐거워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안 그래도 한참 방영할 때 가학성 논란으로 말이 많았는데도 끝까지 개선하지 않고 계속 방치했다. 결국 골목의 제왕에 출연한 [[장정진]] 성우를 [[일요일은 101% 장정진 사망 사건|사고로 사망하게 만들었고]] 장정진 성우 사망 이후에 여론에게 큰 비난을 받자 곧바로 골목의 제왕을 완전 종영했으며, 3주 후에 일요일은 101%도 완전 종영한 다음, [[해피선데이]]로 개편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도 101% 관련 건이 당연히 언급되었고 KBS 운영을 전면 재검토 해야한다고 지적받았다. 그럼에도 2005년에는 <[[도전 지구탐험대]]>에 나온 코미디언 정정아의 아나콘다 사고 때문에 또 한번 예능프로의 가학성 문제가 불거지자 이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결과를 맞았다. 특히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8년의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연장 방영과 제작비 증가분 협상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었다. 이때 해당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와 직접 만났는데, 그 직후 드라마 제작비가 당초 2,100만원에서 2,600만원으로 늘어났다. 당시 K모 제작본부장이 팀장회의에서 정 사장이 상대 외주 제작사 대표를 만났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인상폭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KBS 노조는 이에 대해 2008년 5월 15일자 노보에서 "계약 대상자와 만난 후 일방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은 윤리를 뛰어넘어 정 사장이 과연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리고 5월 22일자 '정연주와 K 본부장은 진상을 밝히라'는 내용의 제2탄 성명서에서는 "실무진이 한창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공영방송의 사장이 상대 외주 제작사 대표를 만난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며 정사장이 외주제작사 대표와 왜 만났는지를 물었다. 여담이지만, [[무인시대]]를 끝으로 고려사 계획을 끝낸 게 정연주 자신의 성향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돌아다닌다. 원래는 '북벌영웅', '무인시대2', '삼별초', '망국'까지 고려시대를 무대로 한 정통사극이 계속 이어질 계획이었는데, 정연주 사장 시절 그 계획이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것. 심지어 <[[역사스페셜]]> 종영 후 <인물현대사> 편성 때 정치 논란도 따라붙었으며 새 MC를 [[문성근]]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결국 고려사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폐기시키고 탄생한 사극이 《[[불멸의 이순신]]》이다. 드라마 자체는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불멸의 이순신이 자칭 원작으로 삼았다는 것이 [[김훈]]의 《칼의 노래》이고,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이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책이 하필 《칼의 노래》였다는 걸 생각하면 다소 거시기한 감이 있다. 참고로 이 《불멸의 이순신》을 기점으로 KBS에서 방영된 제대로 된 정통사극은 단 한 편도 없다.[* 흔히 정통사극으로 인식되는 《[[정도전(드라마)|정도전]]》 마저도 등장인물들의 대사 곳곳에 작가의 개인적 생각을 지나치게 주입시키며 마치 시청자들을 가르치듯 하여 정통사극으로서의 가치를 손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다만, 2004년 당시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KBS가 700억원대 적자를 봐서 정연주 자신의 입지에 큰 타격을 입은데다가[* 한창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시청료 징수율이 40-50%대에 불과했던 시절에도 수백억대 적자를 본일이 없었다.], [[무인시대]]의 시청률이 호평에도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 다만, 이건 공익성을 강화하겠다고 원래 대하사극 뒷 부분에 편성되었던 시사 프로그램을 9시 뉴스 뒷시간대에 편성하고, 대하사극 시간대를 10시대로 잠깐 옮긴 것도 영향이 꽤 크다.][* 물론 2010년대 기준으로 본다면 넘사벽급으로 잘 나온 거지만 [[용의 눈물]] 방영시기부터 [[대왕 세종]] 방영 초기까지는 기본 20%는 넘게 나오던게 보통이었다.]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역사스페셜도 2000년대 초반부터 PD들로부터 프로그램 포맷 변경 요구가 많았고, 문성근 MC 선정도 정치성향보다 진행능력을 중점으로 한 것이다. 오히려 시사 프로그램과 보도 프로그램의 자율성은 정연주 사장 치하에서 더 잘 보장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KBS 전직 보도국장이었던 김시곤도 보도국장에서 해임당한 후에 9시 뉴스의 큐시트를 안 본 사람은 정연주와 [[이병순]][* 다만, [[이병순]] 때 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얘기가 있고 실제 편집면에서 정연주 시절에 비해 딱딱해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중간간부들이 알아서 충성을 해댄 결과라고 보여진다.] 단 둘 뿐이라고 얘기했다.[* 이후 [[고대영]] 후임 사장인 [[양승동]]도 본인 말로는 9시 뉴스의 큐시트을 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여타 직원들의 증언에서도 [[KBS 뉴스 9]]의 큐시트를 처음 한 두 번만 보고나서는 아예 큐시트 자체를 올려놓지말라는 지시를 내려서 아예 보지 않았다는 일화가 나오며,[*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9시 뉴스 큐시트를 미리 챙겨보는 것은 관행이었다. 자유언론의 수호자이자 대표적인 진보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박권상도 KBS 사장으로 재직했을 때는 9시 뉴스 큐시트를 챙겨볼 지경이고 그 이전으로 가면 말 그대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수준이다.] 그 만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제 [[한미 FTA]] 관련해서 KBS 프로그램에서 한미 FTA에 대해 대놓고 까댄 덕에 참여정부 인사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또한 탐사보도팀을 신설해서 KBS의 취재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보강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2TV의 보도 프로그램이 상당한 수준으로 강화되었던것도 바로 정연주 사장 재임시기였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저녁 8시 뉴스에 대대적인 보강에 나섰고[* 사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수시로 평일 오후뉴스에 대해서 수시로 보강작업에 들어갔던 것이 일이기는 했다. 9시 뉴스와의 차별점을 내세우기도 어려워서 시청률이 잘 나오지도 않았고 시간대와 타이틀이 수시로 바뀌어서 문제였지만.] 2TV 평일 아침 시간대에도 [[KBS 아침뉴스타임]]이라는 나름대로 규모있는 뉴스 프로그램이 신설되었고[* 그 이전에도 뉴스가 편성되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10 ~ 20분 정도 편성되거나 아침교양 프로그램의 코너 정도로 편성된 편.] 또한 심야 시간대에 편성했던 기존의 "생방송 세계는 지금'을 확대해서 편성한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경쟁프로그램이 [[MBC 뉴스 24]]와 [[SBS 나이트라인]] 같은 [[마감뉴스]]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KBS 뉴스라인]]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또 <인물현대사> 같은 현대사 재조명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그 밖에 프로그램 아이템 선정이나 편성에 대해서도 대체로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었던지라 정연주 퇴임 후 KBS 내 보도국 기자들이나 일선 PD들 가운데서 정연주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후문도 있는데, 이러한 이유는 정연주 이후의 사장의 경영수완이 정연주 사장보다도 오히려 좋지 않은 데다가[* 물론 이건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감안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의 안전빵에나 신경쓴다는 점도 한 몫한다. KBS 드라마 PD들과 예능 PD들이 상당수가 [[JTBC]]나 [[CJ E&M]]로 이직할 정도면 말 다한 셈. 실제로 2008년 9월에 정연주가 불법적으로 해임되었을 때 KBS 노조에서 철저하게 방관하는 입장으로 시위대를 막을려 했던 행동을 보였던 데 반해서 KBS 기자협회와 PD협회에서는 정연주의 강제 해임만은 어떻게든 막으려 했고 이 때의 갈등으로 인해 기자와 PD를 중심으로 KBS 제2노조(KBS 새노조)가 창설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제1노조에서는 여전히 정연주를 비판하는 입장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