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안국 (문단 편집) == 개요 == 定安國 938년? ~ 985년 12월? / 986년 1월? (10세기 전반) [[발해유민]]들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국가로 [[만주]]와 [[압록강]] 유역을 근거지로 활동했다. [[거란족]]의 [[요나라]]에 저항하여 [[발해부흥운동]]을 일으킨 수많은 세력들 중 하나인데, [[올야국]](兀惹國)과 [[후발해]]를 제외하면 발해부흥운동 중에서 50년 가까이 되는 긴 존속기간을 미뤄보아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짐작할 수 있으나[* 다만 기록상으로 보면 후발해가 더 길 수도 있다. 정안국 멸망 이후에도 계속 기록이 나오기 때문.] 역시 기록은 부족하다. 발해 부흥국들 중에서 기록이 그나마 좀 많은 국가인데, 정안국은 무려 반 세기나 존속했으나 이후 정안국 유민으로 보이는 오소경이 995년 올야국을 세웠지만 다음해 다시 요나라에 항복했다.[* 대씨인 대연림이 1029년 [[흥료국]](興遼國)을 세우고 여진 등 세력을 키워 요나라에 대항했으며 고려에도 지원 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괜히 요나라에 개기고 고려가 돕지 않아 역시 다음해 멸망했다. 요나라의 지방관이었던 고영창이 건국한 대발해는 1116년 1월에 건국했으나 역시 [[금나라]]와의 대립 끝에 4개월 만에 멸망했다. 고려는 이 과정에서 보주(지금의 [[평안북도]] [[신의주시]])를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발해부흥운동으로 세워진 국가들의 기록 자체가 별로 없는 데다가 이 국가들이 역사의 비중에서도 크지 않기에 역사 교육에서도 이 국가들에 비중을 두어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제1차 여요전쟁]]의 원인에서 요나라의 정안국 정복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언급되었었다. 현재는 이마저도 삭제되었다. 즉, 발해의 멸망부터 여요전쟁 발발까지의 60여 년은 정안국이 요나라의 침입을 받아주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해주었고 그 덕택에 고려는 정안국이 잔존했던 기간 동안 건국 초기의 혼란함을 가라앉히고 국력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