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신대 (문단 편집) === 언론과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혼동 === >'''일련의 선행연구를 통해, 혼동되었던 여자근로정신대와 ‘위안부’가 성격이 다른 것임이 파악되기 시작'''하다. 여자근로정신대는 일제가 전쟁수 행을 위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조선인여성들을 대(隊)단위로 구성하여 일본 군수공장에 동원한 것으로서 '''성동원을 위한 ‘위안부’ 동원과는 내용이 다른 것'''이다.(기존 위안부 피해자에는 여자근로정신로 동원되었다가 위안부로 동원되었다고 보고된 사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위원회 신고건 에서 새로이 밝진 피해사례는 없었다'''. 조선 여자근로정신로 동원되었다가 안부로 동원된 사례에 해서는 '''앞으로 구체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재판을 통해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가시화되고 있고, 학술연구에서도 여자근로 정신대 단위의 동원방식이 구별되고 있으나, '''아직도 미디어에서는 여자근로정신대와 ‘위안부’ 동원을 혼동하여 보도하기도 하는 등 양자의 개념 혼동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상태'''이다.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방식에 의한 노무동원에 관한 조사 (조사책임자:김 미 현 조사3과 ), 2008년 11월 4일, 7 >위원회 남성 신고건 중 [[후쿠오카현]](福岡縣) 일본제철(日本製鐵) 야하타(八幡) 제련소로 동원되었다고 파악된 신고건 은 2008년 4월 현재 206건이다. 조선인 남성의 경우 연돌 제작, 특수강 등에 배 치되었다. 야하타제련소로 동원된 남성 생존자에게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해 질문해보았으나, 의미있는 증언은 없었다.(…) 질문에 대해 일본인 여성들을 봤다고 대답하는 경우, '''여자근로정신대를 ‘위안부’와 혼동'''하여 외출할 자유도 없었고 자신이 있던 곳엔 그런 것은 없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방식에 의한 노무동원에 관한 조사 (조사책임자:김 미 현 조사3과 ), 2008년 11월 4일, 2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