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소공 (문단 편집) === 세자 시절과 재위 초창기 === 정 장공 23년(기원전 720년), [[주평왕]]이 정나라와 인질을 교환할 때 왕자 호와 그가 각기 주나라와 정나라에 인질로 갔다. 이때 주평왕이 죽어 세자 홀은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왕자 호는 정나라에 적응하지 병으로 죽어, 그 아들인 [[주환왕]]이 즉위한다.] 정 장공 30년(기원전 713년), 정 장공이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 [[노나라|노(魯)나라]]와 송나라를 칠 때 세자 홀은 나라를 지켰다. 송나라는 급한 상황을 면하고자 사마 [[공보가]](孔父嘉)[* [[공자]](孔子)의 조상이다.]에게 [[위(춘추전국시대)|위나라]]와 함께 정나라의 수도인 신정을 치게 했다. 세자 홀은 [[채중(춘추시대)|채중]]과 함께 성을 굳게 지켜 정나라를 위기에서 지켜냈다. 정 장공 38년(기원전 706년), 북융족이 제나라를 치자 제나라가 사자를 정나라에 파견해 구원을 요청했다. 정 장공은 세자 홀을 보내 제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6월 북융을 쳐부수고 노획물을 제나라에 주었다. 당시 제나라의 군주였던 [[제희공]](齊僖公)은 자신의 딸인 [[문강]](文姜)을 시집 보내려 했으나 세자 홀이 이렇게 말하며 거절[* 소설 열국지에서는 제나라가 이민족에게 침략당했을때 정소공이 세자시절 지휘관으로 출병하여 작전을 입안하여 이민족을 격파한데 대한 호감이 작용하여 후술할 [[고거미]]의 암살을 징벌하는 의미로 [[제양공]]이 고거미를 거열형에 처했다고 서술되었다.]했다. "정나라는 소국이고, 제나라는 대국입니다. 그러니 격에 맞지 않는 결혼으로 사료됩니다." 정 장공 43년(기원전 701년) 5월, 정 장공이 죽자 제족은 세자 홀을 추대했다. 그가 바로 정 소공이다. 채중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갔는데, [[송장공]]은 자신의 외조카인 공자 돌을 즉위시키라고 협박했다. 그리하여 9월 공자 돌은 송나라의 원조를 받아 정나라의 군주가 되니 그가 바로 [[정여공]]이다. 정소공은 위나라로 망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