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성공 (문단 편집) === [[스페인 제국]]과의 충돌과 사망 === [[스페인]]의 [[필리핀]] 총독 돈 사비냐노 만리케 데 라라(Don Sabiniano Manrique de Lara, 1609~1679)에게 너네 '소왕국'을 정복할 수 있지만 불쌍해서 봐준다면서 순순히 조공을 바치라는 서신를 보냈다. 이에 만리케 데 라라가 보낸 서신은 정성공을 "중국 해안의 지배자이자 통치자인 정성공 귀하"라고 불렀지만 이와는 별개로 이런저런 조롱을 담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쳐들어 올 수 있으면 와보세요. 저희가 소왕국이건 대왕국이건 당신들이 여기 쳐들어올 힘이 있기나 하신가요? 듣자니 당신들, 만주족은 물론 네덜란드랑도 죄다 원수졌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귀하의 무례 때문에 앞으로 귀하와 무역을 봉쇄하겠습니다. 무역을 다시 하고 싶으시면 사과를 해주세요." || [[필리핀 도독령]]은 대만과 인접했고, [[스페인인]]들이 소수였으며 스페인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대만 정복 당시 네덜란드군은 요새에서 수비를 하는 입장이었고 정성공 군대는 공성전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는 정성공 측이 훨씬 더 막심했다. 정성공은 25,000여 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질란디아 요새를 공격했는데 동원 병력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12,500여 명이 전사 혹은 질병사했다. 비교하자면 당시 네덜란드측 사망자는 전사자와 병사자, 포로로 잡혀 참수된 사람 포함 1,600여 명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필리핀 도독령은 만약 스페인 본토에서만 병력을 조달받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이미 당시 [[라틴아메리카]] 북부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와 갈레온 무역으로 연결되어 입지가 나름 탄탄한 상황이었고, 때문에 정성공에 대해서 이런 도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도독의 편지는 정성공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한편 정성공은 정지룡의 빈소를 지키다가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필리핀에서 중국인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듣자 [[분기탱천]]하여 '''만주족과 연합하여''' 필리핀을 치겠다는 맛간 소리까지 늘어놓았다. 병상에서 고열에 시달리며 온갖 헛소리를 늘어놓는 정성공에게 부하들이 >"온 세계가 당신께 숨죽이고 있습니다. 스페인도 그렇습니다." 라며 진정시켰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정성공은 병 때문에 골골대는 상황이었다. 정성공이 하루는 바닷가에 나갔다가 겁에 질린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면서 >"저 쌓여 있는 참수된 시신들을 어서 치워라! 오, 저 시신들이 자신들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를 나에게 묻기 위해 왔다!" 라고 말하며 벌벌 떨었다고 한다.(출처: 조너선 클레멘스 《해적왕 정성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원정을 준비하던 도중 정성공은 [[1662년]]에 남명의 마지막 황제인 [[영력제]]의 처형 소식을 듣게 되었고 정성공 역시 사망하게 되었다. 이때 영력제를 죽인 것은 정성공과 같은 한족 출신으로 청나라에 투항한 [[오삼계]]였다. 오삼계는 나중에 청나라에 맞서 [[삼번의 난]]을 일으키면서 영력제의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만, 그게 진심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삼계에게 호응하는 옛 명나라의 유신이나 사대부는 한 명도 없었다. 죽기 직전에 정성공은 >'''"내 소임을 다 하지 못했으니, 무슨 낯으로 하늘에서 황제 폐하를 볼 수 있겠느냐! 어찌 뵐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만 원주민들은 슬퍼하면서 그의 사당까지 만들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