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명훈(지휘자) (문단 편집) === 국립 오페라합창단 사건 === 국립 오페라 합창단 집단 [[해고]]와 관련해 해고 철회 운동에 지지를 호소하러 온 사람들의 청을 거절한데다가 직접 관련도 없는 [[2008년 촛불집회]] 관련 발언으로,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100만 명이나 촛불 들고 거리에서 서서 미국 쇠고기 안 먹는다고 시위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죠?"까지 했다고 한다. 작가 [[목수정]]이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당시 국립 오페라 합창단은 신임 [[유인촌]] 문화부 장관 취임 이후 예산 절감을 이유로 해체가 결정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산 절감을 이유로 국립 오페라 합창단을 해체했지만 정작 오페라단 전체 예산은 더 늘었다. 물론 오페라단 예산이 늘어났다고 해서 무조건 합창단 운영을 유지해야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합창단 운영에 우선하는 분야가 있을 수도 있다. 해체로 인해 졸지에 실업자가 된 오페라 합창단 단원들은 각계에 해체 반대 지지서명을 받는 중이었다. 이들은 정명훈이 2003년 자신들과 함께 까르멘 공연을 하고나서 프랑스에도 없는 최고의 합창단이라며 극찬으로 립서비스를 했었다는 이유로 명망있던 정명훈에게 꼭 지지서명을 받길 원했고 정명훈의 형을 통해 지지서명을 요청했다. 당시 이들을 돕던 [[진보신당]]에선 파리지부 당원인 목수정 등을 보내 정명훈에게 서명을 직접 요청한 것이다. 과거 정명훈은 사회당 정권이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 임명되어 좌파로 분류되기도 했었고 1994년 보수당이 집권하며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자 소송을 걸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해고 취소 판결을 받아냈었다. 이 때,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노조는 정명훈을 위해 부당해고 반대서명을 해준 적도 있었고 이는 재판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때문에 목수정 일행은 정명훈이 지지서명 정도는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참고로, 정명훈이 처음 노조에게 요청한 건 [[파업]]이었는데 노조는 평상시 그와 사이가 나빴던 탓에 큰 표차로 파업을 부결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1/0002004997?sid=103|관련기사]]. 하지만, 지휘자의 활동은 대체로 연주자의 노조 활동과 부딪히기 마련이고 특히 노조의 활동이 가장 잘 보장된 프랑스에서 숱한 파업을 겪은 정명훈은 노조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단원들에게는 '''"당신들 지금처럼 파업하면 한국에선 감옥에 간다."'''라고 했다. 이 때도 서울시향 개편 문제로 노조와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서울시향에 그를 임명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등 대체로 친정부적인 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지지서명을 거부하고 서명을 요청하던 목수정 일행과 언쟁을 벌였다. 이에 대해, 여론은 '목수정이 새벽 1시에 일면식도 없던 정명훈을 사전 약속도 없이 찾아가서는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말싸움까지 벌이고는 오히려 정명훈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식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글이 많았다. 같은 진보계로 분류되던 [[진중권]]까지 목수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목수정에게도 많은 비난이 가해졌으며, 심지어 진보계의 [[전여옥]]으로 불리기도 했다.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인 레디앙 측은 '''목수정이 상처를 입었다며 덧글란을 폐쇄'''하였다.[* 그리고 훗날... 목수정은 [[QAnon]] 이론을 수용한것으로 보인다.] 참세상에 올라온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2181|목수정의 반론]]에 의하면 그들은 정명훈의 비서와 사전약속을 해서 낮에 찾아갔고 비서를 통해 불어로 된 서명운동 용지를 전해주고 아침에 받아가기로 한 뒤, 한글로 된 문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다시 인쇄한 용지를 들고 호텔로 찾아갔는데 마침 호텔로비에 손님과 함께 있던 정명훈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정명훈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이고 한참동안 언성을 높인 것은 정명훈 혼자였고 자신들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대꾸한 것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정명훈 측의 반론이나 해명은 딱히 없었다. 실제로, 정명훈과 목수정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은 '''쇠고기 문제나 아프리카 사람을 돕느니 하는 것이 아니다.''' 정명훈은 서명 거부 때, "그 사람들이 서명을 해서 구제해줘야 할만큼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클래식 음악하면 막연하게 대우받고 귀족적일거라 생각하지만 2001년 기준으로 국내 최고대우를 받고 있던 KBS 교향악단 단원 평균 연봉이 2500만원 선이었고 2005년 서울시향 수석연주자 연봉이 3500만원 선이었다. 그에 반해 기본적으로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특성상 배우는 과정에서 비용이 굉장히 크게 들어가는, 시쳇말로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 분야의 대표격이다. 학교 진로상담에서도 예체능은 부모의 재정능력까지 고려하여 권유하는 경우가 절대다수. 따라서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대다수 순수음악 전공자들은 집안에 어느 정도 재력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조차도 악단이나 오페라 단원들이 고용조건 등으로 인해 파업을 하거나 노조를 조직해 협상을 벌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드라마 작가들도 노조를 구성하고 있어 이들이 파업할 경우는 아예 드라마 자체가 못 나오는 경우도 많다. 목수정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 역시 생계를 가진 생활인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연대를 해야 하고, [[사회적 약자]]인 개개인들은 때로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들을 지지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의 공립 관현악단들에 입단하는 것은 고시 소리를 들을 만큼 어렵지만 그 뒤에는 [[철밥통]]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발전을 게을리 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정명훈이 KBS 교향악단을 4달 만에 사퇴의 형식으로 해임된 것은 오디션을 둘러싼 단원과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KBS 교향악단은 [[드미트리 키타옌코]] 퇴임 이후 끊임없이 악단 운영과 관련된 잡음이 터져나왔고, 키타옌코의 후임으로 부임한 함신익도 창단 이래 최악의 내분 상황에서 불명예 퇴진하고 악단도 KBS와 계속된 불화 끝에 재단법인체로 독립해 재출발할 때까지 수많은 공연 취소와 그로 인한 비판 여론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결과, 한때는 독보적인 국내 원톱이던 위상은 크게 떨어져서 서울시향에 완전히 역전당한 상태다. 서울시향의 경우에도 취임 후에 철저한 경쟁체제로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명훈이 경쟁과 실력을 강조하는 것은 상임지휘자로서 당연한 업무집행인 것이다. 그러나, 고시 소리 들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들어온 인재들이 자기 개발을 소홀히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적절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용자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다. 위에서 문제가 된 사안은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평가 제도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도 아니고, 그야말로 합창단을 해체하여 근로자 전원을 해고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갈등 상황이다. 이를 그저 "실력이 부족하면 해고에 대한 반론권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회사 실적이 안나온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리해고]]가 가능하다고 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명훈이 책임자도 아니고, 실력이 있음에도 해고된 거냐는 뉘앙스로 되물은 정명훈이 정리해고를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실, '''이 문제에서 정명훈은 외부자라 개입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