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릉사 (문단 편집) == 복원 == [[북한]]은 1974년에 발굴작업을 한 후 이 절의 일부분을 복원하였다. 금당들과 정문, 회랑 일부를 복원하였지만 크고 아름다운 팔각칠층 목탑은 예산 문제인지 복원하지 않고 대신 작은 [[석탑]]으로 대체하였다.[* [[유홍준]]은 "이 때문에 장중한 건축의 마스터플랜과 고구려 문화 특유의 웅장함이 흔들려버렸다"고 지적했다.(출처: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파일:정릉사 팔각칠층석탑.jpg|width=375]] [[단청]]이 꽤 독특해서 이슈가 되었다. 종종 이 정릉사 복원이 남한의 삼국시대 건축 복원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팩트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정릉사 단청은 4~6세기 무렵에 그린 고구려 고분 내 벽화에서 묘사된 건축물 단청 문양을 응용한 것이라[* 이는 [[동명왕릉]]이나 [[청암리 사지]] 목탑 복원도 비슷하다.] 고증 면에서 어느 정도 근거가 있고, 고구려 유적 발굴로 드러난 대로 붉은색 기와를 쓰므로, 남한처럼 단청을 천편일률적으로 조선시대 형태로 칠한 것보단 훨씬 낫다.[* [[백제문화단지]]에서 재현한 백제 궁궐과 능사 5층 목탑을 초록색 위주인 조선시대 단청으로 칠했기 때문에 고증오류라 대차게 까인다.] 하지만 알려진 다른 지역의 비슷한 시기 건축물과 상이한 점이 많고, 적색이 주류를 이루는 고구려 고분내 건축 관련 벽화와 다르며, 금속 부재로 추정되는 것이 단청 문양으로 대체되는 등 세부적인 면에서 맞지 않는 점도 많아서 북한의 복원도 정답이라고 확신하긴 어렵다. 창에 창호를 단 것이나 건축물의 비율과 구조가 여전히 조선시대의 건물에 가까운 점 등도 의아하다. 게다가 중앙의 목탑이 복원되지 못하고 석탑으로 대체된 부분이나 경제적 사정상 [[불상]]에 금박을 못 입히고 비슷한 색으로 칠한 점은 좀 아쉬운 편.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3821|사진들]] [[파일:정릉사 보광전 불상.jpg|width=37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