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동남 (문단 편집) == 상세 == 슬하에 2남 1녀가 있다. 큰 키는 아니지만 굉장히 다부진 체격, 다소 강렬한 인상때문에 연기 경력 대부분이 조연급 역할이다. 커리어는 화려한 편이 아니지만 [[차력]]에 가까운 개인기나 미간의 정중앙에 있는 큰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야인시대]] [[고깃집 아저씨]]로 유명한 배우 김하림도 이마 정중앙에 점이 있다.] 이마에 장난으로 점을 그리면 정동남 존에 그렸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어린 세대들은 "[[코]]로 패트병에 [[바람]] 불어넣는 차력사 [[아저씨]]로 [[특기]]는 날[[계란]] 덥썩덥썩 먹기, 계란판 위에서 계란을 안 깨뜨리고 밟으며 걸어가기, [[맥주]]캔 따지않고 뜯어서 마시기." 정도로 기억하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이 사람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파고들면 비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대한[[검도]] 7단, [[태권도]] 7단, 대한[[합기도]] 공인 8단이며, 대한합기도 시범단장, 수상안전연합회 중앙구조본부장, 경찰특공대 대테러 사범 및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안전관리대책기획단 자문위원장, 환경처산하 자연보호중앙회 구조본부장, 중앙 119구조단 명예대장 등등의 직함도 있다. [[국제연합]]이 지정한 '''[[네덜란드]] 국제구급구조 교육전문기관(ICET) 지도자 교육'''을 이수했다. 이미 1972년 [[동양방송]] 입사 때부터 무술사범 특채로 입사한 것이니... 그 밖에도 [[미국]] 연방교통안전국([[NTSB]]) 표창을 받은 바 있다. 중3 때(1969년) [[한강]]에 빠진 동생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오게 되면서였다. 어려운 시절이라 어린 나이에 죽으면 장사도 잘 치르지 못한다. [[한강철교]] 아래 모래톱에 사과 박스로 관처럼 만들어 화장을 했다고 울며 고백한 적이 있다. 동생의 시신을 찾으려고 배를 수소문 했지만 돈이 없어 결국 배를 구하지 못한 것도 한이 됐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은 무조건 구해야 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45년 간 수 백 명을 구하고 580여 명의 익사자를 수습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