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교회 (문단 편집) == 성향과 분포 == 정교회 비잔티움 예법에서 사용하는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전례는 이름 그대로 동방 교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에게서 유래한다.[* 물론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이 모든 것을 만든 것도 아니고, 요한 성인의 시대 이후로 전례가 불변한 것도 아니지만, 관습상 이 전례의 이름은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에게 돌린다.] 다만 제국 양식의 화려한 전례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어 사멸하였고, [[수도원]]에서 이루어지던 상대적으로 간소한 전례만이 남았다.[* 다만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를 간소화한 라틴 예법 가톨릭이나 애초부터 비성경적이란 이유로 전례를 무시하던 개신교와 달리,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비잔티움 예법 가톨릭]]에는 화려함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있다.] 그 외에 달라진 게 있다면 주교관이 겁나 화려하게 바뀌었다는 점 정도. 현재의 주교관인 미트라는 원래 동로마 후기 [[황제]]가 쓰던 [[왕관]]이었다.[* 초기에는 좀 더 간결한 관이 황제의 관이었다. 궁금하다면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를 그린 프레스코의 제관을 살펴보면 된다. 깔끔하게 생긴 게 상당히 간지난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된 이후부터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예전에는 엄연히 정교회 세계의 수호자인 (동)로마 황제가 있는데 감히 왕관스러운 주교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정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서구의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이슬람과 맞서 싸우거나, 이슬람 지배 아래에 있었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있고, 서방교회는 동방교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의 칼날로부터 막아 준 것을 인정한다.[* 이와는 별개로 [[스페인]]의 경우 이슬람과의 또 다른 최전선인 [[이베리아 반도]]를 지켰다는 자부심 덕에 한때 가톨릭 문화권의 맹주 노릇을 했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문명의 후신인 [[모로코]]는 그리스도교와의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옛 피지배자였던 스페인에 의해 역관광을 당하는 와중에도 계속 버텨내며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문명을 대대로 계승해왔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옛 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폴리스(현재의 [[이스탄불]])나 다른 총대교구들은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하면서 전부 이슬람권에 넘어갔다. 정교회의 총 신자 수는 약 2억 5천만명. [[그리스도교]]의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가톨릭]]의 1/5 가량이며, 2위인 [[개신교]]의 한 교파에 비해서는 더 큰 편에 속한다. 개신교 교단을 모두 합치면 정교회보다 신자 수는 압도적으로 많으나 교단이 여러 개여서 분리되어있고, 반면에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정교회의 종교적 동질성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개신교는 서로 다른 교파들끼리 일반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 [[파일:OrthodoxyInEurope.png|width=100%]] || || 유럽의 동방 정교회 분포 지도 || 정교회 신자들은 주로 동유럽의 정교회 문화권 지역에 많이 분포해 있다. 근대 이후 서방 지역에서 지성의 발전에 따라 실시간으로 도전을 받아 온 가톨릭이나 개신교와 다르게 정교회는 근현대 서구 문명의 핵심 지역인 서유럽의 영향권을 비교적 벗어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저 두 종교에 비하면 해당 사회 내에서는 종교적 영향력이 더 강하다. 정교회가 이토록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강한 이유는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며 떨어져 나간 개신교와의 분쟁 등 서방의 가톨릭에 비하여 정교회권에선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고, 정치적으로 세속 군주와 다툴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정작 정교회의 본산인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간의 다툼이 정말 심해서 동로마 황제가 교황과 결탁하곤 했다.] 정교회 역사의 상당한 기간을 차지하는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아예 세속 군주가 [[이교도]]였고, [[밀레트 제도]]를 도입해 정교회에 대해서 "너희 신자들 딴 맘 품지 못하게 잘 감시하고, 세금 꼬박꼬박 걷어서 보내줘. 그리고 너네 법이랑 너네 권리 모두 존중해 줄 테니까 알아서 살고, 근데 기어오르면 알지?" 수준으로 견제한 정도라 교회와 세속 군주가 다툴 일이 없었다. 오히려 발칸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거나 무슨 사단이 벌어지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게 책임을 물어 경질시키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참고로 동시대 러시아 제국의 경우 압도적으로 강해진 황제에 의해 아예 총대주교가 공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 '시절'이 무슨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기간도 아니고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제정 러시아]] 망할때까지 무려 200년 넘게''' 이어졌다[* [[신성통치종무원]]이 다스리던 시절을 끝내고 200년만에 처음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 자리에 오른 티혼의 서임식은 제정 러시아 말엽도 아니고, [[볼셰비키]] [[10월 혁명]]이 터진지 3일 뒤, 즉 나라 공식적으로 망한 다음에야 이루어졌다.] [[오리엔트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들도 정교회와 같이 동방에 있어서, 서방의 가톨릭보다는 동방의 정교회와 모습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두 교회와 정교회는 서로 별개이다. 오리엔트 정교회와 네스토리우스파는 공의회에서 의견차로 갈려 나갔기 때문에 정교회라는 명칭을 쓸 수 없지만, 자신들이 정통이라는 논지로 자칭으로 정교회를 자처한다. 최근 들어서는 [[동유럽]]의 탈공산화 이후 종교 탄압이 사라지고 사회 혼란으로 급감했던 출산율이 회복되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정교회 인구수도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상승하는 추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