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학공투회의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d7e1cb26caa5daca1305457dd06c1ead.jpg|width=100%]] || [[파일:전공투.jpg|width=100%]] || [[파일:전공투_행진.jpg|width=100%]] ||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連帯を求めて孤立を恐れず >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짐은 개의치 않으나''' > 力及ばずして倒[* 원문은 '[[倒]]'가 맞으나 사진에는 '[[仆]]'라고 적혀 있다. 독음은 같다.(뜻도 비슷하다.)]れることを辞さないが > '''힘 다하지 않고 꺾임은 거부한다''' > 力を尽くさずして挫けることを拒否する >---- >도쿄대 야스다 강당 벽에 적힌 글. 일본의 시인이자 평론가 타니가와 간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며 도쿄 야스다 강당 점거농성 당시 강당 벽에 쓰여 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충 해석하자면 "많은 사람과 함께 연대함을 요청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뜻대로 전진할 것을 겁내지 말자." 정도. 개인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중시하고 기성 조직에 의한 통제를 극복하고자 한 조직 원리와 행동 원리를 표현한 문장으로, 전공투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표현한 명문장으로 평가된다. [[일본]]에 있었던 [[대학생]] [[운동권]] 단체의 연합 조직. 일명 '''전공투'''(젠쿄토. 全共闘. ぜんきょうとう.) [[일본]]의 [[반정부]] 투쟁이 활발하던 1960년대에 일본의 여러 [[대학교]]의 단체가 학교별로 모여 구성한 [[학생운동]] [[조직]]이다. 각 대학별로 전공투가 구성되어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도쿄대학]]과 [[니혼대학]]의 전공투였다. 동대전공투는 "대학 분쇄"[* 여기서 '대학 분쇄'란 '대학을 없애자'가 아닌 '대학의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자' 쪽에 더 가까운 의미이다.] 및 "자기 부정"을 슬로건으로 투쟁했다. 소위 말하는 "실력 투쟁"으로 가두 폭력시위를 벌였고 이전의 학생 시위와는 다르게 과격한 폭력투쟁을 일삼았다. 특정 당파나 정치 집단이 자신들의 정강과 사상을 내세우는 조직운동이라기보다는 대중운동의 성격이 더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렇기에 전공투는 각 학교마다 다른 방식을 보이기도 하고, 하나의 방식으로 정형화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60년대 이후의 일본 극좌폭력 운동권을 싸잡아 "전공투"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전공투와 [[일본 신좌파]]를 혼동하는 것인데 타당하지 못하다. 전공투는 단일한 조직이나 정파가 아니고 60년대에 생긴 [[학생운동]] [[조직]]이다. 각 대학별 전공투들을 통일해 전국전공투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성대회장을 경찰기동대가 덮쳐 간부들이 연행되면서 와해된다. "전학공투회의"의 "전학"이란 "전국학생"(National Students...)의 줄임말이 아니다. 전학이란 "한 학교의 전체 학생" 대부분이 참여했다(All-campus)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80~90년대에 대학생들의 [[운동권]] 단체가 사회적인 파장이 매우 컸다. 또 전공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극좌]]로 빠진 것도 아니다. 전공투가 좌절된 뒤 [[적군파]] 같은 과격노선으로 빠져 인생이 망한 사람들은 전공투 이전부터 [[일본 신좌파|신좌파]] 정파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며 과격파의 삽질 때문에 전공투가 민심을 잃어 실패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운동권 학생들이 몸을 사려 전공투 대오에서 이탈하며 전공투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운동권들이 취한 자구책이 과격화였다. 선후관계가 정반대인 것이다. 완장을 차거나 총대를 멘 이들은 대학에서 제적당했고 심하면 인생이 망했다. 최초의 전공투였던 일대전공투 의장 아키타 아케히로는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살았고 1994년 전공투백서 편집위원회가 과거의 동지들에게 설문조사를 돌렸을 때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 바보 같다", "운동을 떠난 주원인은 생활",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생활" 등 상당히 냉소적인 답변을 했다. 그러다 1968년이 지나가고 자연스럽게 운동에서 이탈한 대부분의 전공투 세대는 이후 [[단카이 세대]]가 되어서 고도경제성장의 꿀을 빨았다. 이는 서양의 [[베이비붐 세대]]와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전학적으로 진행되었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정부의 불통적인 대처로 빡쳐 버린 학생들에 의해 폭력화되면서 운동의 고립이 심화되었다. 래디컬해진 사람들은 학교도 때려치우고 지하조직에 들어가 FBI 수배를 받는 등 인생이 망했지만 어영부영 운동을 그만둔 대부분의 세대는 기득권층이 되어 현재는 신세대들에게 "[[OK Boomer|부머]]"라는 멸칭으로 불리고 있다. 즉 전공투의 본질은 '''일본의 [[68운동]]'''[* 68혁명]이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