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투식량/미군 (문단 편집) == C-레이션(Field Ration, Type C) == || [[파일:external/www.ww2rationtechnologies.com/crationtew12oz.jpg|width=4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rations-museumdisplay.jpg|width=400]] || [youtube(JA6u-sYhFi0)] Steve1989MREInfo의 C-레이션 B-유닛 시식 영상.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C-레이션은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서 쓰인 미군을 대표하는 전투식량이다. C레이션, 줄여서 'C랫', 혹은 [[포네틱 코드]]로 '찰리 랫' 등으로도 불렀다. [[1938년]]에서 [[1945년]] 동안 사용되었는데 좀 더 맛있고 영양이 고루 배분되었으며 보존이 용이한 식단 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1945년에는 C-레이션 개량판이 나와 [[1958년]]까지 전투식량을 책임졌다. C-ration은 C형 식량이라는 뜻으로, 신선한 혹은 냉동한 일반 식료(A-ration)과, 야전 취사장에서 조리하는 해동이 필요없는 형태의 포장해둔 혹은 대형 캔 형태인 식량(B-ration)에 이은, 미리 조리해두어 즉시 먹을 수 있는 개인용 [[통조림]] 식량을 가리키는 것이다. Combat ration의 약자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실 명칭 자체는 그냥 순서대로 ABC를 붙인 것. 한 끼 분량의 C레이션은 보통 M-유닛[* meat unit, M-unit]이라고 부르는 고기 요리 캔과 B-유닛[* bread-and-dessert, B-unit]이라고 부르는 [[빵]]과 [[디저트]] 캔으로 나뉜다. 한 명의 병사가 하루에 M-유닛 세 개와 B-유닛 세 개, 악세사리 팩 한 개씩 받는 형식. 캔 디자인은 12온스 중량에 높이 4.4인치(11㎝), 지름 3인치(7.6㎝)로 주름이 없는 양철로 만들었다. 2차대전 중에는 금색으로 도색하였고 이후에는 녹색이었다. 참치캔이 100g, 수입맥주 작은 캔이 330g 정도이니 12온스 340g의 통조림이면 꽤 작은 편이다. M-유닛은 12온스(340g)의 고기 통조림으로, 시험 생산 때는 메뉴가 1파운드(16온스, 450g)의 고기&콩(meat and beans), 고기&으깬 [[감자]](meat and potato hash), 고기&채소 [[스튜]](meat and vegetable stew) 세 가지뿐이었다. 정식 생산 때에도 으깬 감자, 채소가 들어간 고기 스튜, 콩이 들어간 고기 스튜의 세 가지로 엄청나게 질리는 문제는 여전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참전군인들 중에는 "오늘 저녁도 입맛이 안났다. 또 그놈의 마른 음식이 또 나왔다. 그런데 앞에서 누군가 고국에 있을 때 먹던 군침도는 음식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서 그놈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병장). "C레이션을 삼켰는데 뱉을 뻔했지만 간신히 삼킬 수 있었다. '''계속 소화를 시키느라 위에서 난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배탈은 나지 않았다'''."(중위) ...라고 말했다.] 특히 다진 고기는 맛 없기로 악명 높았다. 하지만 전시 대량생산 문제 때문에 병사들의 악평에도 계속 밀어붙여 생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1파운드의 시험 생산을 지나 정식 생산된 12온스의 첫 번째 C-ration M-유닛은 3가지로 다음과 같다. 1.다진 고기, 2.당근&감자 고기 스튜, 3.콩 고기 스튜이다. 여기서 고기 스튜는 소금, [[후추]], [[양파]]를 뿌린 쇠고기&돼지고기를 섞어서 만든다. 아무리 영양학적으로 신경을 썼다고는 하지만 신선한 재료를 조리해서 만든 A-레이션과 B-레이션보다는 영양이 불균형할 수 밖에 없었고, 수주간 C-레이션만 먹은 병사들에게서 영양실조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한 국방부는 1943년에는 가능하면 5일 연속으로 먹이지 말라는 훈령을 내린다. 하지만 적진 깊숙히 진격한 병사들은 밥차는 커녕 C/D-레이션이 유일한 식량이었던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그마저도 싸우느라 먹을 여유가 없었기에 유명무실했다. 질리는 메뉴 문제는 군도 인식해서, [[1943년]]에는 [[https://en.wikipedia.org/wiki/Chef_Boyardee|셰프 보야르디(Chef Boyardee)]] 사[*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에토레 보이아르디(Ettore Boiardi)가 마을에 이탈리안 스파게티 식당을 열었는데 특히 미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내놓은 미트볼 스파게티가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그의 손맛에 반한 단골손님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손님 중엔 사업가도 다수여서 헥터의 스파게티에 대한 상품화 제의를 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 미국 최초의 [[인스턴트]] [[스파게티]] 제품을 출시하게 되었고, 이후 [[통조림]] 사업에 뛰어들어 2차대전 중 자신의 스파게티 통조림을 대량공급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현재에도 [[캠벨 수프]]와 함께 통조림 업계를 이끄는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대기업이다.]와 군납계약을 하고 [[토마토 소스]]로 버무린 미트 [[스파게티]]가 추가되었다. 미국 사람들 인식이 그냥 스파게티는 간식거리고 거기에 미트볼을 더하면 한끼식사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것도 맛이 없었다는 것.[* 무엇보다도 기도비닉을 유지하느라 함부로 불을 피워 덥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파는 셰프 보야르디나 다른 즉석 스파게티 캔보다 맛이 없는 물건을 데우지 못하고 그대로 뜯어먹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단 새로 추가된 메뉴였고 나중에 추가된 햄과 리마 콩같은 괴악한 메뉴보다는 그나마 먹을만했기에 보야르디의 공장은 하루 24시간 계속 가동되어 하루에 25만개의 스파게티 통조림을 생산했으며, 전후 헥터 보야르디는 전선에 대량의 군용식량을 공급한 공로로 금성수훈 훈장(Gold star order of excellence)을 수여받았다. [[1944년]]에는 다진 [[햄]]과 [[달걀]]과 감자, 고기&[[국수]], 돼지고기&[[쌀]], 프랑크푸르트([[소시지]])&콩, 돼지고기&콩, 햄과 리마 콩, [[닭고기]]와 야채 메뉴, 채소를 넣은 쇠고기 스튜 등이 추가되고 으깬 감자는 짤렸다. 덤으로 테스트 단계에서 맛없다고 소문난 메뉴 하나도 같이 짤렸다. 하지만 맛없다는 것을 자르니까 이번에는 햄과 리마 콩 메뉴가 제일 맛없다고 소문났는데... 어쨌든 이 후기 생산분과 C레이션 남은 분량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전에까지 끈질기게 남아서 병사들의 미각을 괴롭혔다. B-유닛(bread and dessert portion)은 하드택 비스킷과 비슷한 소금 크래커 5장, 설탕 [[알약]] 3개, [[포도당]] 알약 3개와 [[음료수]] 분말로 구성되어 있다. 음료수 분말은 커피[* 한국전쟁 때 미군이 C레이션을 한국인에게 나눠주면서 그 안에 들어있던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인들의 입맛을 길들이면서 인스턴트 커피가 한국에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단 커피뿐만 아니라 C-레이션 자체가 한국 전쟁 때 민간인들에게 군인이 하나씩 던져주면서 많이 퍼졌다. 이 C-레이션이 전후문학이나 이 시기를 다룬 한국 문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미군관련 필수요소.]와 레몬 주스 가루, 비타민 C 또는 육수 수프(부용)이다. 음료수 분말은 1944년에는 오렌지 주스 분말 또는 달콤한 코코아 분말, 1945년에는 포도 주스 가루로 바뀐다. 포도당 알약도 [[1941년]]에는 [[땅콩]]이나 [[건포도]] 사탕, 참스 [[사탕]] 또는 브라취 [[초콜릿]] [[캐러멜]] 등 다양한 종류의 사탕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1944년에는 원형 초콜릿이나 쿠키 샌드위치[* 크라운 산도같은 것]로 바뀌고 크래커가 4장으로 줄어든다. 1944년에는 아침식사 용도인 [[오트밀]] [[시리얼(음식)|시리얼]]이 포함된 B-유닛이 아침식사 M-유닛인 "햄, 달걀, 감자"에 묶음으로 제공되었다. 여기에 악세서리 팩이 추가된다. 최초에는 12온스(340g) 통조림으로 포장되었지만, 나중에는 갈색 포장지로 싼 패키지 형태로 바뀌었다. 악세서리 팩 안에는 설탕 알약, 정수제(1945년까지만), 평평한 나무 [[숟가락]], 사탕 입힌 츄잉[[껌]] 한 조각, 3개씩 포장된 담배 3개 또는 9개가 포장된 담배 1개, 방수 [[성냥]] 20개, 종이로 싼 [[P-38(캔따개)|P-38 캔따개]], 화장실용 [[휴지]] 약간이 들어있었다. 이때부터 P-38 캔따개는 분실의 우려로 [[군번줄]]에 묶어서 사용하였다. 1945년부터는 악세서리 팩 역시 개량되어, 의무감(Surgeon General)의 지시에 의해 정수제가 빠지고 소금 알약이 추가된다. 또한 낭비를 막기 위해 담배 숫자와 성냥 숫자를 일치시킨다. 담배는 [[카멜(담배)|Camel]]과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s]]가 제일 유명하고[* 국내 인지도야 럭키 스트라이크가 제일 높지만, 당시 미국의 광고나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카멜을 물고 있다.] 그 외에도 Chelsea, Chesterfield, Craven "A"-Brand, Old Gold, Philip Morris, Player's, Raleigh, Wings 등 다양한 브랜드의 담배를 보급하였다. 위 레이션을 대용량으로 보급할 때는 40파운드(18㎏) 무게에 1.12입방피트(0.03㎥)의 커다란 직사각형 나무상자로 포장해서 보낸다. 각 상자 안에는 24개의 M-유닛, 24개의 B-유닛, 24개의 악세사리 팩이 들어가 하루에 3끼씩 8일치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M-유닛 구성은 앞서 언급한 메뉴에 맞추어 초기에는 8개의 고기와 콩, 8개의 고기와 야채, 8개의 고기와 채소 스튜 통조림으로 구성되어[* 물론 후기인 1944~1945년에는 아침 메뉴가 다진 햄, 달걀&감자의 M-유닛과 오트밀 씨리얼 B-유닛이 채소 스튜 메뉴를 대체함.] 8-8-8 구성이 된다. 이러한 메뉴들이 1끼니에 해당하는 24개의 작은 패키지로 포장된다. 이렇게 배급된 C레이션은 으레 야전용 스토브 등을 이용해 데워먹었는데, 다른 곳에서는 옹기종기 모여서 토치를 이용해서 데우기도 했다. 그러면 내용물이 익으면서 즙이 새어나와 보기가 좀 지저분해지긴 했지만 따끈해져서 꽤 먹을만해졌다고. C4폭약을 좀 덜어서 깡통을 묻고 불을 붙이기도 했다. 연기도 별로 안나면서도 레이션을 데울 수 있었고 그 열로 커피도 끓였다고 하며, 오키나와에 배치된 해병대는 섬에서 나오는 온천수를 이용해서 데우기도 했다. 세계 곳곳으로 파병간 미군들에게 보급된 만큼 주둔한 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미군이 들어간 나라는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경제가 무너지고 나라 살림이 피폐해져있던 터라 기존의 통화보단 물물교환식의 거래가 일상적이었는데, 오래 보관하기도 좋고 영양분도 일정하고 열량도 높은, 무엇보다도 주식에 진짜 고기가 들어가는 C-레이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식자재였다. 멀리 안 가고 한국만 봐도 전후 '''기브미쪼꼬렛''' 하며 초콜릿과 껌을 얻기 위해 미군을 따라다녔던 사람들의 어릴적 일화들이 셀 수 없이 존재한다.[* 소설 '쑈리 킴'에서도 미군들에게 매춘을 알선하는 주인공이 달러나 혹은 먹다 남은 레이션 통조림을 보수로 받는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미군이 주둔한 도시는 어디든지 '''깡통시장'''이 생겨났는데, 그 깡통이 바로 C레이션이다. 먹고 사는게 어려웠던 전후 유럽과 아시아의 국민들에게 이 통조림은 미국의 풍요로움과 부강함을 보여주는, 그 어떤 프로파간다보다 훌륭한 물건이었다. 한편 미군에게는 불평의 대상이었던 이 물건이, 순무를 갈아서 순무에 발라먹던(...) 적군인 독일군에겐 '미군 한 놈만 잡으면 분대가 파티를 열 수 있다'는 레어템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또한 후식으로 포함된 담배는 일종의 유사화폐로 이용되었다. 미군들은 담배만 있으면 신선한 식재료나 특산품 등, 어지간한 건 거의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프랑스에서는 포도주(한 개피에 한 잔)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영옥(군인)|김영옥]] [[대령]]이 대위였던 시절, [[이탈리아]]에 주둔했을 때의 일이다. 김영옥 대위는 담배를 안피웠기 때문에 C-레이션에서 딸려오는 담배가 가득 쌓였다고 한다. 이것을 가방에 가득 채운 후, 로마로 휴가를 가서 시내의 술집에서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나왔다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 비록 집안 사정이 궁핍하지만 명문가 출신으로서 몸을 섞지 않고, 정중하게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을 가이드(?)로 고용하여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동료들은 "이야 영옥아, 넌 무슨 수로 그 아가씨하고 같이 지냈냐? 우린 아무리 해도 안되던데."하고 감탄했다고. 한편 [[적십자]] 레이션이라고 [[독일]]에 있는 미군 포로들에게 지급한 C레이션도 있었는데, 미군 포로 역시 이때 딸려온 담배를 화폐로 사용하여 독일군 포로 감시원들과 필요한 물자를 물물교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적십자 레이션 수령을 거부했다. 한국군도 창설 초기인 국방 경비대 시절부터 월남전까지 보급품으로 지급되었다. 이 당시는 아직 한국군의 자체 전투식량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미군의 C레이션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통조림 자체는 대한제국 시절부터 들어왔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서민들은 구경도 못하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먹던 거였다. 때문에 레이션을 처음 받았을 때 애지중지하며 먹지 않고 고이 모셔두다 첫 휴가날 고향의 가족들에게 가져가는 장병들도 있었다. 비록 느끼하다고는 하지만 고기가 꽤 푸짐하게 들어가있고 초콜렛이나 사탕같은 후식거리도 있었으니 고기가 비싸서 마음대로 못먹었을 시절에는 명절 선물 용도로 요즘의 고급 선물세트와 동일하게 취급된 셈이었다. 또한 당시 군대 식사라는 것이 잡곡밥이나 국에 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쪼가리나 나물 정도가 나오는 정도가 많았기 때문에 고기 요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시 군인들에게는 꽤나 별식이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영어를 몰랐기에[* 참고로 1960년대 당시에는 영어교육을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는데, 중학교 진학률이 50% 안팍이었고, 영어 선생들의 실력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가정사정이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일터에 뛰어다는 청소년들이 많았기에 영어 알파벳만 알아도 감지덕지한 시기였다. 영어조기교육이 어쩌니 저쩌니하는 2000년대 이후로도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학적 차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이 당시에 영어를 배우기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오죽하면 [[M18A1|클레이모어 지뢰]]에 적힌 FRONT TOWARD ENEMY를 읽지 못해 반대 방향으로 설치하여 몰살당한 소대가 여럿 있을 정도였다.] 고기와 맛있는 후식은 흔들어보는 것으로 내용물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있는 병사나 고참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초기에 나간 파병인력들이 처음에는 안남미로 만든 밥과 소금으로 만든 멀건국, 반찬 쪼가리 몇개를 받아 먹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넉넉하게 배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에게서 전투식량을 받아서 부족한 열량을 보충했는데, 미군 전투식량이 원채 느끼한것들이 많다보니 처음에는 맛있게 먹어도 나중에는 [[타바스코 소스]]같은것을 뿌려도 몰렸고, 이 때문에 본국에 사정사정 해서 김치통조림을 받게 되었는데 이 김치가 배급되기 시작한 이후로는 햄과 소시지 등을 섞어서 [[부대찌개]]를 만들어먹기도 했는데 이 것도 괜찮았다는 모양이다. 여기에는 웃픈 이야기도 하나 있는데, 내용물이 잘 들어있나 점검하려고 포장을 미리 다 뜯었다가 정작 휴가날이 되었을 땐 다 상해버려서 못 먹게 돼서 울상으로 휴가를 나간 장병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당대 한국인들은 상온에 음식을 두면 상한다는 상식을 몰랐을 정도로 무지하진 않았다. 아마 군대에서 교육받을 때 '전투식량은 보존성이 좋다' 라는 말을 '상하지 않는다'로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야인시대]]에서 대한민청 사건으로 [[미군정]]에 잡힌 우미관 식구들이 조사받으면서 "밥먹고 합시다"를 시전하여 이걸 배급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뭐야, 무슨 깡통을 던져줘?" "야, 이거 C레이션 아니냐? 이거 갖고 밥이 되겠냐?"하면서도 나름 맛있게 먹었지만, 나중에는 김치가 없으니 밥먹는 느낌이 안난다며 투정하기도 한다. 특히 [[휘발유(야인시대)|휘발유]]가 더더욱. 밍밍하고 김치가 없다는 불만은 훗날 베트남전에서 C-레이션을 먹던 한국군 장병들도 하게 되었고, 한국군용 [[전투식량/한국군#s-2.2.2|김치 레이션]]이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