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태일 (문단 편집) == 영향 == [include(틀:한국 진보진영 관련 문서)] > [[1963년]] [[호치민시|사이공]]에서 [[불교]] 승려 [[틱광둑|틱꽝득]]의 자살은 [[미국]]이 지원한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대통령 [[응오딘지엠]]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이와 비슷하게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의 노동 활동하는 사람들의 반독재운동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 > 한국의 민중봉기 p.248 전태일은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의 죽음에 한국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전태일이 없었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은 [[사람이 죽어야 바뀐다|수십 년 뒤에나 존중받았을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http://m.ch.yes24.com/article/view/23696|#]] 특히 그동안 미처 주목받지 못했던 장시간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의 현실이 한국 사회에서 조명받게 되었고 정치적 의미에서의 [[민주화]]만을 염두에 두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이때부터 노동자와 도시 [[빈민]] 등의 삶의 문제들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교육시키고 권리 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하거나 공단에 직접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1970~1980년대의 한국에는 대학생이 21세기보다 훨씬 수도 적고 엘리트로의 길이 보장된 고급 두뇌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들이 공장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큰 결단을 요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노력은 [[YH 사건]], [[부마민주항쟁]], [[인천 5.3 운동]],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보답받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이용해 정부나 제도권 [[언론]]에서는 이들을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장하는 불온한 위장 취업자[* [[기업]] 측에서 아예 이런 대학생들의 취업을 막아 버렸기 때문에 위장 취업을 해야 했다.]'로 호도하기도 하였다. 또 노동자들 스스로도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세우려는 노력을 하였고 이에 따라 [[1970년대]]에 청계피복노조 외에도 동일방직, 콘트롤데이타, 반도상사, 원풍모방, YH무역 등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세워져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1970년대에 세워진 민주 노조는 대부분 공단 지역의 영세 노동 집약적 사업장 위주로 세워졌으며 [[남성]]에 비해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이러한 흐름은 [[1987년]] [[6월 항쟁]]의 영향으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 [[현대그룹]], [[대우그룹]] 등 [[대기업]] 남성 노동자 중심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대거 세워지기 전까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주도적인 흐름을 형성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ZAYfggg.jpg|width=100%]]}}} || || '''아들의 영정을 안고 오열하는 [[이소선]] 여사''' || 그의 사후 그의 가족들도 모두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특히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은 아들 전태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들, 딸들의 말을 지켜주기 위한 어머니의 삶으로 바뀌었다. 한 아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서 이소선은 '[[청계천]] 노동자들의 어머니'[* 훗날 노동 운동으로 여러 번 [[감옥]]에 가기도 했다.]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전설이 되었으며 아들의 유지를 이어받아 청계피복노조 등 노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민주화 운동 유가족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오랜 기간 활동했고 [[2011년]] [[7월 18일]] [[심장마비]]로 의식 불명에 빠졌다가 2011년 [[9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말년의 삶을 다룬 [[영화]]로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가 있다(아래의 영화 '어머니'와는 다른 작품). 태준식은 노동 운동 영상 제작 그룹인 '노동자뉴스제작단'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쌍용자동차]] 공장 점거 파업과 이후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당신과 나의 전쟁'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동생들도 노동운동가[* 친동생 전태삼도 어머니와 노동 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갔고 실질적으로 어머니가 노동 운동에 투신한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면서 고생을 했다. 전태삼이 밝힌 바로는 전태일에게는 본인 말고도 [[6.25 전쟁]] 때 태어난 남동생이 1명 더 있기는 했는데 아기 때 죽어서 2남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로 여러 고초를 겪었다. 전태일의 여동생인 [[전순옥]]도 그의 뒤를 따라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어 19대 국회의원직을 역임했으며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의 29번, 15번째 주자로 연설했다. 남동생 전태삼도 형의 뒤를 이어 노동운동가로 활동한다. 전태일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의 모란묘지공원에 있는데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묘지도 근처에 있다. 모란묘지공원에는 [[문익환]], [[조영래]], [[박종철]](가묘) 등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운동가들의 묘지들이 모여 있다.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로 각종 단체, 정부, 미디어 등에서 그의 삶과 노동 운동을 재조명했고 그의 정신을 기리면서 2020년 [[11월 12일]] [[대한민국 정부]]는 노동계 최초[[https://www.ytn.co.kr/_ln/0101_202011121346047540|#]]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