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태일 (문단 편집) == 개요 ==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태우면서 외쳤던 말 [[대한민국]]의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1960년대 후반 [[평화시장(서울)|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 취직하고 1970년부터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이면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s-1|분신자살]]하여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흔히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노동 운동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며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전태일 열사가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현재 수준보다 대우받지 못하거나 대우받는 시기가 늦어졌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들에게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해 [[한국]]사회가 의식하기 시작하였고 [[지식인]] 계층, [[대학생]]들, 당사자 집단인 노동자 계층이 그의 죽음으로 각성의 계기를 맞이했으며 어머니 [[이소선]] 열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노동운동가가 되어 '노동운동의 대모([[大]][[母]])' 로 불리게 되었다. 사후 그는 노동열사로 추서되었으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에 무궁훈장이 추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